유럽연합(EU) 25개국 정상들이 2일 서명한 신(新)재정협약은 유로존 위기의 산물이자 통화동맹을 재정동맹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교두보다.

유로존 위기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인 방만한 재정운용과 과다부채를 막기 위해 회원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EU 집행위 등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회원국들이 `재정주권'을 소위 `브뤼셀 정부권력'에 대폭 넘김으로써 그동안 분열과 해체의 위기에 부닥칠 때마다 통합을 가속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EU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황금률 = 기존 유럽안정ㆍ성장 협약(SGP)엔 누적 공공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60%, 당해연도 재정적자는 GDP의 3%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라는 뜻에서 황금률로 부르며 이 협약에도 그대로 도입됐다.

이와 별도로 부채 상환이자 부담이나 경기침체에 따른 재정수입 감소 등을 감안한 소위 `구조적 재정적자'의 경우 GDP의 0.5%까지만 인정된다.

누적 공공부채가 GDP의 60% 미만인 건전 재정국의 경우 구조적 재정적자가 1%까지 인정된다.

◇ 국내법규에 반영 의무 = 신재정협약이 SGP와 다른 점 중 하나는 각국이 이를 준수할 의무를 자국 법규에 반영토록 한 것이다.

당초 독일은 황금률이 회원국 헌법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위해선 모든 회원국이 개헌안 국민투표를 거쳐야 해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다 상당수 국가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가급적 헌법에 반영한다"는 권장 사항으로 정리됐다.

◇ 시정과 제재 절차 = 특정국이 황금률에 정해진 기준에서 벗어날 경우 자동적으로 시정절차가 시작된다.

해당국은 부채감축과 재정적자 등에 관해 분명하고 구체적인 개선 일정을 제출해 승인받고 이행해야 한다.

특히 당해연도 재정적자 비율이 GDP의 3%가 넘는다고 집행위가 판정하면 벌과금 부과 등 제재절차가 자동적으로 시작된다.

위반국이 끝내 이를 시정하지 않으면 회원국 전체회의에서 제재가 확정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자동제재' 또는 `반(半)자동제재'로도 표현된다.

종전과 달리 신재정협약에선 회원국 85% 이상이 찬성하는 가중다수결로 제재가 결정되기 때문에 제재를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로비하는 일이 쉽지 않다.

집행위는 물론이고 독일과 네덜란드는 당초 이러한 자동제재 원칙을 재정적자 위반국 뿐만 아니라 공공부채 과다국가(GDP의 60% 이상)에도 적용하려 했다.

그러나 빚이 많은 이탈리아 등이 이에 반대해 무산됐다.

◇ 유럽사법재판소(ECJ)의 권한 = ECJ는 협약 가입국이 협약에 규정된 건전재정 의무 사항 준수를 자국 법규에 반영, 보장하는지 여부를 검증할 권한을 갖게 된다.

회원국들은 미준수 국가를 ECJ에 제소할 수 있으며 ECJ가 최종 판정할 경우 해당 국가는 GDP의 0.1%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이 벌금은 오는 7월1일 출범할 유로안정화기구(ESM)의 구제금융기금으로 편입된다.

당초 독일 등은 ECJ에 재정적자나 부채 규정 미 준수국에 대한 벌금 부과권도 주려 했으나 프랑스 등이 주권 침해 요소가 있다고 반대해 이 조항은 제외됐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서명식 후 기자들에게 향후 협약 운용이 본궤도에 오르면 회원국 예산과 재정정책에 대한 ECJ의 감독권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EU 집행위 권한 강화 = 구제금융프로그램을 받은 나라는 물론 위험국가에 대한 재정정책에 집행위가 개입할 권한이 강화된다.

회원국들로부터 차기연도 예산안을 사전에 받아 검토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 유로존 정상회의 = 17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유로존은 연간 최소 2회의 정상회담을 열어야 한다.

비(非)유로존이면서 협약에 가입한 나라의 정상들을 이 가운데 최소 1회 이상 초청해 공동 회의를 열도록 규정돼 있다.

폴란드 등은 자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들이 내려질 모든 회의에 비유로존 국가들도 참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프랑스가 비유로존에 정상회담을 개방하는 것에 반대했다.

◇ 협약 발효시기 = 신재정협약은 영국 등의 반대 때문에 기존 EU 조약을 개정, 27개국 모두에 적용되는 형태가 되지 못했다.

원하는 국가끼리만 맺는 새로운 협약이다.

협약의 발효는 조약 비준국이 12개국을 넘는 순간 시작된다.

서명한 25개국 가운데 24개국은 자국 의회에서 비준을 받으면 된다.

아일랜드만 국민투표에 부치도록 돼 있다.

(브뤼셀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