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父子간 일자리 전쟁
“55세 정년이 말이 됩니까. 몸 건강하고 업무도 후배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데…. 대학교 3학년인 아들과 고등학교 1학년인 딸 아이는 어떻게 돌보라는 말입니까.” “스물일곱 살짜리 아들이 30군데 정도 원서를 냈는데 모두 떨어졌어요. ‘스펙’은 좀 떨어지지만 성격 활달하고, 외국어도 곧잘 하는데…. 거참 취업 재수를 하게 생겼어요.”

지난주 저녁 모임 참석자들이 쏟아낸 탄식이다. ‘단군이래 최고의 국운(國運) 융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한국에서 세대간 일자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양극화와 ‘고용없는 성장’이 빌미를 제공했다면, ‘100세 장수시대’는 이를 격화시킬 것이란 분석이다.

일자리, 만병통치약은 없다

4·11 국회의원 선거와 12·19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정파는 일자리 문제에 만병통치약이 있는 것처럼 떠벌리고 있다. “(청년층을 위해) 대기업 청년고용의무할당제를 두고….”(민주통합당), “(베이비부머를 위해) 기업 정년을 60세로 늘리면 된다.”(새누리당). “일자리 해법~, 어렵지 않아요!” 이런 패러디가 나올 법하다.

그렇지만 일자리 대책엔 만병통치약이 없다. 멀리보고 씨를 잘 뿌려놔야 훗날 과실을 따먹을 수 있을 뿐이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 게 새집달라”며 주문을 외우는 식으로 새 일자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는다. 일자리 문제는 세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 ‘3D형 일자리’ ‘미래형 일자리’로 나눠 분리 대응하는 게 낫다. 좋은 일자리는 대기업과 정부, 공공기관 등이 갖고 있는 자리다. 문제는 정부가 쥐락펴락할 수 없는 대기업 일자리다. 대기업은 ‘고용없는 성장’의 덫에 빠져 있음에도 최근 신입사원 채용을 꾸역꾸역 늘려가고 있다. 사회적 압력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한 건 대기업이 젊은이를 많이 채용하면 할수록 베이비 부머들이 발 붙일 공간은 줄어든다는 점이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하다’는 ‘3D형’ 일자리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빠르게 넘겨주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눈높이를 낮춰가라’는 권유는 ‘낮은 대로 임하라’는 경구같다.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 3D업종에서 부활의 불꽃이 타올라 ‘좋은 일자리’를 다시 만들어 내길 바랄 뿐이다.

中企·서비스업에 기회 많아

미래형 일자리는 성장 잠재력이 큰 중소·중견기업과 헬스케어 관광 문화 엔터테인먼트 등 서비스업에서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엔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병역특례를 받는 조건으로 취업할 수 있는 문을 과감하게 넓혀주고, 서비스 분야엔 영리병원 허용 등 인재가 유입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줘야 한다. 그게 정부 역할이다.

지난주 중견기업 간담회 참석차 청와대에 다녀온 송호근 와이지원 사장(60)에게 전화를 걸어 일자리 문제를 물었다. “열심히 일하면 기업이 크고, 그 결과 일자리도 늘어납니다.” 우문현답이다. 1981년 창업한 송 사장은 와이지원을 절삭공구 ‘엔드밀’ 세계시장 1위 기업에 당당히 올려 놓았다. 국내외 25개 사업장에서 12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와이지원에 좋은 일자리가 많아진 건 송 사장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면서 기름밥을 먹은 결과다. 송 사장 같은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창업전선에 많이 뛰어들도록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게 일자리 해법이다. 성공하는 기업인이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낸다.

남궁 덕 중기과학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