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시장' 中古의 재발견…벼룩이 공룡되다
직장인 박은수 씨(29)는 최근 중고(中古)책 거래에 맛을 들였다. 한 번 읽고 마는 책은 인터넷에 절반 가격으로 내놓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서울 종로, 부산에 이어 지난 16일 서울 신촌에 오프라인 중고서점까지 냈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중고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 명품 가전제품 등 고가 제품이 주를 이뤘던 데서 책 의류 등 저가 제품 중고 거래도 활발하다. 이제 중고시장은 벼룩시장 수준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지적이다.

◆5조원대 거대 산업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중고시장(온라인 제외) 규모는 4조1272억원(업체 수 2만2740개)으로 한 해 전보다 10.6% 커졌다. 이런 성장 추이를 감안하면 지난해 중고시장은 5조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온라인 거래까지 포함하면 연간 10조원 시장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중고 상품 거래는 온라인에서 더 활발하다. 네이버 카페인 중고나라 회원 수는 900만명에 육박한다. 이곳에선 의류 잡화 카메라 컴퓨터 가구 등 140여가지 품목이 거래된다.

새로운 직업도 생겼다. 중고폰의 등급을 매기는 단말기 감정사, 진품 여부를 확인하는 중고 명품 감정사 등은 중고시장이 만든 직업이다.

대형업체들도 중고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SK텔레콤은 고객으로부터 중고폰을 매입하고 온라인사이트에서 판매하는 ‘T에코폰’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8월 공식적으로 운영한 이래 중고폰 거래량은 280대에서 지난달 2만대로 늘었다. 온라인 오픈마켓 11번가도 중고 전문관인 ‘중고스트리트’를 열고 20여만가지 중고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는 상품 수를 100만가지로 늘릴 계획이다.

◆빠른 취향 변화가 성장 요인

이처럼 중고시장이 크고 있는 이유는 경기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올 1분기 소비자태도지수는 2009년 이래 최저인 44.2를 기록했다. 소비자태도지수는 현재와 미래의 생활형편, 경기, 내구재 구입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판단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지수로, 50을 넘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경기가 나빠질 거라고 예상한다는 의미다. 이민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기 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중고 상품을 이용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며 “특히 거래자들 간에 감시가 생긴 덕에 온라인을 통한 거래가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취향이 급속히 변하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패션 디지털기기 등 신제품 출시 주기가 빨라지면서 비용을 줄이며 새 제품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중고시장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디젤매니아(청바지), 파우더룸(화장품) 등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카페에서 관련 제품 중고 거래가 활발한 이유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