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2승1패로 유리한 고지에 오른 SK 와이번스의 원동력으로 포수 정상호(29)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정상호는 탄탄한 수비와 안정된 투수 리드 능력을 보여주면서 비룡 군단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된 안방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11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KIA 조범현 감독은 승부처로 2회 안치홍의 번트 실패를 꼽았다.

당시 무사 1, 2루의 절호의 기회를 잡은 KIA 벤치는 안치홍에게 희생번트 지시를 냈으나 정상호는 탁월한 기지를 발휘해 상대 공격의 흐름을 끊었다.

정상호는 초구부터 투구 브라이언 고든에게 빠른 직구를 요구했고, 정확히 대지 못한 안치홍의 번트 타구는 포수 바로 앞으로 떨어졌다.

재빠르게 공을 잡은 정상호는 망설임 없이 3루로 공을 뿌려 2루 주자를 잡아냈고 이어 타자 주자까지 아웃시키는 병살 수비로 연결됐다.

선두 타자였던 최희섭의 평범한 내야 플라이를 놓쳐 위기를 자초했던 정상호가 발 빠른 수비로 상황을 해결하며 '결자해지'를 한 셈이다.

2점 차의 아슬아슬한 승부가 이어진 이날 경기 내내 정상호의 투수 리드는 SK에 큰 힘이 됐다.

SK 선발투수로 나선 브라이언 고든은 82개의 공 중 직구를 49개나 던졌다.

장기인 커브는 9개밖에 던지지 않았다.

특히 정상호는 경기 초반 끊임없이 직구를 요구해 "커브는 손대지 않기로 했다"며 변화구를 의식하던 KIA 타자들의 의표를 찔렀다.

6회 구원투수로 나온 박희수의 연속 삼진도 투수 리드가 빛난 장면이었다.

KIA의 중심타자인 나지완과 이범호를 상대하면서 연달아 2-3 풀카운트에 몰린 정상호는 배짱 있게 뚝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지도록 해 연속 헛스윙 삼진을 유도했다.

볼넷을 내주더라도 이후 타자들과의 승부까지 계산하며 수 싸움을 벌이는 한국 최고의 포수 박경완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정상호는 2001년 SK에 입단해 10년 넘게 프로 생활을 했으나 선배 박경완을 넘어서지 못해 만년 후보에 머물렀던 선수다,
186㎝와 96㎏의 당당한 체구로 투수에게 안정감을 주고 힘이 넘치는 타격 실력을 갖춰 '공격형 포수'로 기대를 모았으나 수비와 투수 리드가 박경완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2인자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전임 김성근 감독과 선배 박경완 아래서 혹독한 교육을 받으면서 야전 사령관으로 손색이 없는 포수로 자라났다.

박경완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올해 주전 자리를 꿰찬 정상호는 정규시즌에서 흔들림 없이 SK의 안방을 지켰다.

42개의 도루를 잡아내는 등 도루저지율 0.438로 전체 포수 중 1위에 올랐다.

서로에 대한 세밀한 분석 속에서 이뤄지는 포스트시즌에서도 활약은 이어졌다.

SK 에이스 김광현은 1차전에서 나온 좋은 번트 수비가 모두 상대 타자의 의도를 꿰뚫어본 정상호의 공 배합 덕분이었다며 주저하지 않고 공을 돌렸다.

김성근 전 감독에게 끊임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던 정상호가 이제는 수 싸움에서 상대 타선을 압도하는 '야전 사령관'이 된 셈이다.

정상호는 "상대가 아직 눈에 띄는 작전을 낸 적은 없는 것 같다.

상대 벤치가 초반부터 허를 찌르는 작전을 잘 쓰는 만큼 이제부터 더 대비해야 한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광주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