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700km 도보행진..긴축정책ㆍ자본주의 병폐 비판
유럽 전역 도시서 15일 일제히 시위 예정

`분노한 사람들'이 유럽연합(EU)의 수도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저녁 브뤼셀 북서부 쾰켄베르크 구의 엘리자베스 공원에 커다란 배낭을 멘 청년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났다.

이들은 쌀쌀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공원 바닥에 삼삼오오 배낭을 내려 놓고 앉았다.

땅거미가 깔릴 무렵 청년들의 수는 2백여 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한 데 모여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유럽 시민들이여 분노하자", "탐욕과 부패에 물든 정치인과 금융가들은 물러나라", "EU는 분노의 소리를 들어라", "진짜 민주주의를 원한다"
이들은 지난 5월 스페인에서 긴축정책에 반대하며 시작된 시민운동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의 동조자들이다.

그리스발 유로존 채무위기는 유럽 서민들의 삶을 짓눌렀다.

국가부도 직전인 그리스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각국은 초긴축조치를 취했다.

대량 해고, 임금삭감, 복지 축소 등이 이어졌다.

스페인의 경우 실업률이 20%를 넘고, 특히 25세 이하 청년 실업률은 45%가 넘는다.

정부의 무능과 부패, 금융자본주의의 탐욕 등에 분노한 시민들은 곳곳에서 항의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스스로를 `분노한 사람들'로 불렀다.

지난 6월 19일엔 스페인 전역에서 10만여 명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스페인 혁명' 또는 '진정한 민주주의' 운동으로도 불리는 이 시위에 대한 공감대가 다른 나라들에서도 형성됐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의견을 주고 받은 이들은 10월 15일 유럽 전역에서 일제히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특히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EU 집행위와 의회를 압박하기로 했다.

8일 엘리자베스 공원에 도착한 청년들은 대부분 스페인에서 출발했다.

마드리드에서 브뤼셀까지 몇 달 동안 1천7백여 km를 걸어 왔다.

일부는 프랑스에서 합류했다.

벨기에 청년들이 마증나갔고, 인근 네덜란드나 독일 등에서도 합류했다.

청년들이 구호를 마치고 텐트를 치기 시작하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벨기에 경찰들이 막고 나섰다.

공원에는 식수와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없어 캠핑이 금지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 당국은 인근 대학의 시설을 빌려 놓았고 비도 오고 추우니 그곳으로 가라고 종용했다.

대부분 이에 따랐으나 일부 청년들은 "이 곳에 속속 도착할 사람들을 맞이할 수 없다"며 버텼다.

경찰은 결국 텐트를 철거하고 수십명을 강제로 대학으로 옮기거나 연행했다가 훈방했다.

`분노한 사람들은 9일부터 15일까지 매일 이 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브뤼셀 곳곳에서 시위를 벌인다.

특히 매일 저녁에 `야간 의회'를 열 계획이다.

무능한 각국 정치인과 EU 관료들이 아닌 "시민의 의회가 시민을 위한 진정한 정책을 논의하자"는 뜻에서다.

주최 측은 유럽 곳곳에서 청년들과 노조원들이 몰려들고 있어 15일까지는 최소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 명이 브뤼셀에 결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15일엔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서도 수천 ~ 수만 명이 각각 참석한 가운데 집회가 동시에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오는 17~18일 브뤼셀에서 모여 채무ㆍ금융위기 대책을 논의한다.

(브뤼셀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