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퇴직 연구원이 남긴 이메일, IT업계에 회자되는 까닭은…
"이노베이션(innovation · 혁신)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이노베이션을 하겠다고 '주장'만 하는 회사처럼 보인다. "

LG전자의 한 과장급 선임연구원이 지난 4월 퇴직하며 구본준 부회장에게 보낸 이메일이 뒤늦게 알려지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 업체 카카오톡으로 이직한 최모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공개한 이메일 내용은 왜 한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창의성으로 무장한 애플과 구글의 소프트웨어 기술에 밀려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단 LG전자뿐 아니라 상명하복의 관료주의에 빠진 국내 기업문화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최씨는 블로그에서 "이노베이션을 위해선 위험감수(risk taking)가 가능해야 하는 데도,LG전자에선 아이디어가 구현될지조차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투자수익률(ROI)을 계산한다"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보안만을 강조하는 경직된 문화는 아이디어 조사조차 어렵게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보안을 이유로 막아놓은 인터넷 사이트가 의외로 많다"며 "아이디어 조사와 기술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접근조차 막히면 대부분 포기하게 된다"고 전했다.

의사결정 과정의 비합리성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제일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자유로운 토론문화의 부재"라며 "톱 매니지먼트(최고경영자 및 최고기술책임자)나 연구소장의 코멘트가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면 진위 여부나 이유에 대한 논의없이 바로 그에 맞게 의사결정이 난다"고 했다. 또 "경쟁사,특히 삼성에서 어떻게 한다더라 하면 이 역시 비판적 토론없이 의사결정이 난다"고 소개했다.

최씨는 연구원들로 하여금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선 철부지 중 · 고생처럼 지시하고 사소한 것까지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씨는 "아쉽게도 CEO로부터 답장을 받지 못했다"며 "LG전자가 방향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메일을 공개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메일 끝머리에 "LG전자를 사랑하고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한 회사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구본준 CEO가 분명히 그렇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적었다.

LG전자 관계자는 최씨 글에 대해 "수많은 연구원 중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특별히 언급할 게 없다"고 말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