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root)으로 돌아갔다. " HP가 PC사업을 매각한 것에 대해 블룸버그는 이렇게 보도했다. HP는 회사 설립 때부터 기업과 엔지니어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던 회사였지,일반 소비자용 제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PC사업을 매각하고 소프트웨어와 기업용 솔루션 등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창업 정신'으로 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HP 전체 매출에서 30%를 차지하는 PC사업부를 처분하는 '도박'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1990년대 말 인터넷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HP는 위기에 처한다. 이때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최고경영자(CEO)가 칼리 피오리나다. 그는 HP 성장을 위해 2001년 PC업계 강자 컴팩을 190억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주고 인수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창업자들이 만든 휴렛재단과 팩커드재단은 인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창업자의 아들인 월터 휴렛은 법정소송까지 벌이며 인수를 반대했다. 반대 이유는 PC사업이 수익성이 낮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전쟁에서는 피오리나가 승리했고 월터를 이사회에서도 쫓아냈다. 이후 HP는 세계 최대 PC메이커가 됐다.

HP의 PC사업부는 그러나 매출 증가에는 기여했지만 수익률은 낮았다. HP의 6개 사업부문 가운데 5%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사업은 PC밖에 없었다. 다른 사업부는 대부분 두 자릿수 이익률을 기록 했다. PC사업 매각을 결정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다. 따라서 이번 결정을 두고 미국 업계에서는 '월터의 복수'란 표현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HP는 1970년대 한 직원으로부터 뛰어난 가정용 컴퓨터 디자인을 사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했다. HP의 문화가 일반 소비자용 제품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란 이름의 이 직원은 이후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업,개인용 컴퓨터 시대의 주인공이 됐다.

HP는 작년 4월 PDA(개인정보단말기) 시장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팜(Palm)을 12억달러에 인수했다. PC에서 태블릿PC와 스마트폰으로 일반 소비자제품 라인업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팜이 보유하고 있는 웹OS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HP의 태블릿을 거들떠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대대적인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애플 등의 공세에 밀려 지난달에는 태블릿PC 가격을 100달러나 낮췄다. 일부 대형 매장에서는 제품을 다시 가져가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웹OS에 기반한 스트마트폰 2종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팜 인수도 실패한 셈이다.

HP는 "태블릿과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비자 시장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HP는 앞으로 수익성 높은 서버와 소프트웨어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영국의 소프트웨어 업체 오토노미(Autonomy)를 102억달러에 인수키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오토노미는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비롯한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레오 아포테커 HP CEO는 "이번 조치로 소프트웨어와 서버 시장에서 HP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포테커는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주로 생산하는 SAP에서 20년간 근무한 전문가다. 그는 CEO가 된 지 11개월 만에 하드웨어와 개인용 시장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김용준/김희경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