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년 7월11일 아침 미국 허드슨 강변 절벽 아래에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과 현직 부통령 애런 버가 권총을 들고 마주섰다. "야비하다"는 해밀턴의 비난에 격분해 버가 신청해 이뤄진 결투였다. 버의 총알은 해밀턴의 척추에 박혔으나 결투로 장남을 잃은 적이 있는 해밀턴은 총을 일부러 허공에 쏘았다. 해밀턴의 장례식에는 많은 뉴욕시민들이 모여 경의를 표한 반면 살인죄로 기소된 버는 남부로 도주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로 가족과 친척 89명을 잃은 사이먼 비젠탈은 나치 전범 찾기에 평생을 바쳤다. 50여년간 1100여명을 법정에 세웠다. 그는 저서 '해바라기'에서 전범 추적이 복수와 응징만을 위한 건 아니라고 했다. 가해자 개개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역사에서 그런 비극이 되풀이돼선 안된다는 신념을 갖고 추적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엿보인다.

1999년 4월 미 콜로라도 컬럼바인 고교생 두 명이 학생 12명과 교사 한 명을 쏜 뒤 자살했다. 추모식장에 포스터가 나붙었다. '억울한 희생자 13명에게만 꽃과 기도를 바친다. 두 명의 악마는 제외한다. ' 2007년 4월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진 버지니아공대에도 추모식장이 차려졌다. 희생자 33명 중 네 번째 자리에 범인 조승희의 추모석이 마련됐다. 사흘 뒤 그곳에 꽃과 편지가 놓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들었니.홀로 끔찍한 고통을 겪었던 네게 손 한 번 내밀지 않았던 나를 용서해 줘.'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가족이나 절친한 사람을 잃는 아픔은 이성으로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원수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역설적 해석도 있다.

76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테러의 충격 속에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시청 광장에 20여만명의 시민이 모여 추모제를 가졌다. 관이나 정치단체 개입 없이 몇몇 청년들의 제안에 의한 자발적 집회였다. 광장에는 피켓이나 플래카드 한 장 없었다. 정부와 경찰의 대응 미숙을 따지지도 않았다. 묵념 추모연주 추모곡합창 등 3시간여의 행사가 끝난 후 시민들은 들고 온 장미꽃을 거리 담장에 놓고 묵묵히 귀가했다. 증오 대신 관용과 화합의 정신을 그렇게 나타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