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인구가 늘어나면서 실버시장이 대폭 커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보건복지부 산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국내 실버시장 규모가 지난해 44조원에서 2020년 149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2010~2020년 고령친화 산업의 성장률이 연평균 12.9%로 전체 산업 평균 성장률 4.7%를 크게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연 예상대로 실버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의 베이비부머들이 서로 엇갈린 은퇴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최근 미국에서는 여유 있는 은퇴 조부모들이 손자 손녀에게 값비싼 물건을 자주 사주면서 관련 산업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난에 시달려 장난감을 잘 사주지 못하는 부모와 달리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는 베이비부머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들을 위해 주머니를 활짝 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직장에 취직하자마자 시작되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비교적 여유로운 노후를 준비하는 사회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베이비부머들은 높은 경제성장의 과실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이웃 일본의 모습은 미국과는 너무나 다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을 일본에서는 단카이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이 은퇴하면 높은 소비력을 앞세워 일본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크게 기대했다. 많은 재산과 시간적 여유를 가진 단카이세대가 호주머니를 활짝 열게 되면 실버산업 등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단카이세대들은 은퇴 이후 호주머니를 꽉 닫아버렸다. 일본 총무성 가계조사에 따르면 2009년 단카이세대 퇴직 이후 60대 이상의 가구당 소비지출은 퇴직 이전인 2005년보다 오히려 6%가량 줄어들었다. 기대를 모았던 실버산업은 막상 뚜껑을 열었더니 결과는 참패였다.

이처럼 일본의 단카이세대들이 호주머니를 닫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1990년 이후 계속되는 경제 불황으로 소비욕구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날로 늘어나는 기대수명과 하락하는 부동산 가격 등이 겹쳐 있다. 연금제도마저 재정난이 심해져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우재룡의 준비된 은퇴] 손자에 사랑받는 美 할아버지…초라한 日 할머니
미국의 은퇴자들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으로 상당한 노후자금을 만들어 여유 있는 생활을 하지만 일본의 은퇴자들은 불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유례없는 인구의 고령화로 일본을 뒤쫓고 있는 한국사회가 일본과 같은 모습이 돼서는 곤란할 것이다. 정부는 연금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하며 금융회사들은 건전하고 효율적인 선진형 은퇴설계를 보급하고 좋은 은퇴상품들을 개발해야 한다. 금융소비자들은 생애설계와 은퇴설계에 대한 지식을 쌓고 자신의 노후를 충분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