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중이온가속기(KoRIA)는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원형 가속기와 선형 가속기가 효율적으로 결합한 세계에서 유일한 가속기가 될 것입니다.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지원과 협력이 꼭 필요합니다. "

김영기 미국 페르미연구소 부소장(49 · 사진)은 19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김 부소장은 페르미연구소를 비롯한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17개 연구기관과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13개 연구기관 사이의 공동 연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방한했다. 페르미연구소는 유럽 CERN(입자물리연구소)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 가속기를 보유한 곳이다.

김 부소장은 1990년 페르미연구소의 양성자 · 반양성자 충돌실험그룹(CDF)에 참여해 소립자의 하나인 '탑쿼크'를 처음 발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 국적인 그는 고려대 물리학과 학부 및 석사과정을 마치고 영국 로체스터대에서 박사학위를 땄으며 미국 버클리대,시카고대 교수 등을 지냈다.

그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들어설) 중이온가속기는 한국 기초과학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라며 "자꾸 새로운 물질을 발견해 집중적인 연구를 해야 노벨과학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페르미연구소가 보유한 원형 가속기 '테바트론'은 각각 1조 전자볼트(eV)의 속도로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충돌하는 실험을 계속하며 새로운 물리 이론을 만들고 있다. 그는 "3년 전부터 테바트론 이상의 성능을 낼 수 있는 가속기를 만드는 '프로젝트 X'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개념 설계를 마치고 기술적 설계(엔지니어링 디자인)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페르미연구소는 '프로젝트 X'와 관련해 중국 인도 등과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소장은 과학은 무엇보다 '투명성'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학은 숨기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것이 본질"이라며 "(현재 기본 설계상) 한국형 중이온가속기는 희귀동위원소 생산 가능성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가속기에 대한 설계는 과학자 커뮤니티가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김 부소장은 페르미연구소의 운영 방식을 들면서 연구소에 최대한 자율적 권한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페르미연구소는 미국 정부 소속이고 재정도 의존하지만 운영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시카고대 등 90여개 대학이 관리한다"며 "이는 정부가 스스로 기술적인 관리 역량이 부족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연연구소에 대한 인사와 예산권 등을 정부가 쥐고 있는 한국을 빗대 한 말이다. 또 "한국이 거대 초전도 핵융합장치 'KSTAR'에 이어 중이온가속기를 직접 만든다니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과학자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