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끼는 인도 콜카타의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면에서 실을 뽑고,자수를 넣고 문양을 찍는 것까지 모두 현지 여성 생산자들의 손길을 거쳤습니다. "

이미영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대표(43 · 사진)에게는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이 남다르다. 세계공정무역기구(WFTO)가 2002년 정한 '공정무역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 유일의 공정무역 패션브랜드 매장 '그루'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안국동 40㎡(12평) 남짓한 매장 안에는 인도와 네팔 방글라데시 라오스 베트남 등 5개국 여성 생산자들이 만든 옷과 소품들로 가득 찼다.

이 대표는 13일 기자와 만나 "공정무역은 중간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빈곤지역의 신흥국 생산자들과 정당한 가격에 직접 거래하는 것"이라며 "생산자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그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생산자에게는 적정한 임금을 주고, 소비자에게는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만든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제공하자는 취지다.

1994년부터 환경 관련 시민운동에 몸담은 이 대표는 "빈곤에 허덕이는 제3세계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공정무역 매장 그루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루'를 운영하는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2007년 여성환경연대 등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 180여명이 출자한 '시민주식회사'다. 2008년 문을 연'그루' 매장은 한 곳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유럽에 600여개 매장을 낸 월드숍처럼 공정무역 제품 멀티숍 브랜드로 키우는 게 이 대표의 꿈이다. 매장 이름에도 나무를 '여러 그루' 심겠다는 이 대표의 포부가 담겨 있다.

그루는 5개국 22개 생산조직에 소속된 현지 여성이 생산한 제품을 현지 가격보다 30~70% 높은 가격을 주고 구입하는 방식으로 공정무역을 실천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아직까지 매출이 많지 않지만 방글라데시에서 파파야 열매로 연명하던 한 할머니는 일을 시작한 뒤 지참금까지 챙겨 딸들을 시집보내기도 했다"며 "공정무역은 이처럼 일자리뿐 아니라 미래의 행복까지 선사한다"고 말했다.

판매가격은 티셔츠가 3만원대,블라우스는 6만~8만원,재킷은 10만원 정도다. 그는 "제3세계 국가에서 만든 옷이라 질이 나쁠 것이라는 선입관이 있지만 직접 옷을 입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현지 여성들은 품질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옷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매장 작업장에는 직원들이 '세계공정무역의 날'인 14일에 롯데홈쇼핑을 통해 판매할 수면 안대 650세트를 포장하고 있었다. 롯데홈쇼핑은 이날 방송시간 중 일부를 공정무역 제품 소개에 할애한다. 이 대표는 "공정무역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날로 좋아지고 있고 유통업체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동정심이나 온정을 베푸는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남아 등 신흥국 생산자들을 질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파트너로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