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금리가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마이너스 실질금리'가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예금이나 채권에 투자해 이자 수익을 받아도 물가를 고려하면 앉아서 손해를 보는 셈이다. 1995년 채권금리 통계가 집계된 이후로 최장 마이너스 상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작년 7월 0.25%포인트에 이어 11월부터 격월로 기준금리를 올렸음에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기준금리와 채권금리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엇박자 현상까지 생기면서 '마이너스 덫'에 빠진 형국이다. 오는 13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점쳐지지만 당분간 마이너스 실질금리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1일 금융투자협회와 통계청에 따르면 시장금리를 대표하는 3년 만기 국고채의 실질금리는 지난달 -0.5%를 기록했다. 4월 기준으로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2%였고 3년 물 국고채 금리는 연 3.7%(월평균)였다. 3년물 국채에 투자해 얻는 명목금리가 연 3.7%이지만, 물가상승률을 빼면 실제로 0.5% 손실을 본다는 뜻이다. 실질금리는 지난해 9~10월 마이너스에서 11월 0.1%로 '반짝 플러스' 전환했지만 이내 급락하면서 12월 -0.3%, 올해 1월 -0.4%, 2월 -0.6%, 3월 -1.0% 등을 나타냈다. 이자소득세(세율 15.4%)까지 생각하면 지난해 9월부터 마이너스를 이어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채권금리 통계가 집계된 1995년 이후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2004년 중반(7~10월, 4개월)과 금융위기 직후(2008년12월~2009년3월, 4개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하지만, 당시는 정책당국이 기준금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 점에서 지금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다른 채권이나 예금 금리도 비슷한 처지다. 5년 만기 국고채의 실질금리는 석 달째 플러스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예금은행 저축성수신(신규취급액 기준) 금리는 3월 3.7%로 같은 달 물가상승률(4.7%)을 1.0%포인트 밑돌았다. 지난해 9월부터 7개월째 마이너스다. 시장금리가 마이너스 실질금리에 발목이 잡힌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3월에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전 세계 과잉유동성 등에 채권 금리는 되레 떨어지면서 마이너스 폭이 더 커지기도 했다. 실질금리가 낮다는 것은 저축보다는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선진국들이 저금리 정책을 펼친 것도 이런 점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경고음이 많다. 기업들은 곳간에 막대한 현금을 쌓아둔 상황에서 굳이 시장에서 자금을 빌릴 필요가 없다. 예금을 빼 부동산이나 증시 등에 투자하는 투자자도 찾기 힘들다. 결국, 낮은 실질금리가 가계나 기업 등 실물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보다는 원자재 등 세계 상품가격의 거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고유선 대우증권 글로벌경제팀장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돈의 가치를 적정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형 현대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 인플레이션이 진행됐음에도 국내외 경기가 괜찮은 흐름을 보인 것은 낮은 실질금리의 축복이었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정연기자 jyhan@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