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전 세계 시계 마니아들의 눈과 귀는 스위스 바젤로 쏠린다. 글로벌 시계 메이커들이 지난 1년간 공들인 '작품'을 쏟아내는 '바젤월드'가 매년 3월 하순에 열리기 때문이다. 바젤월드는 1892개 업체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시계 · 보석 박람회.8일 동안 박람회장을 방문한 관람객 수는 10만명을 헤아린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부터 31일까지 열린 39회 바젤월드에도 파텍필립 롤렉스 오메가 브라이틀링 쇼파드 크로노스위스 율리스나르덴 태그호이어 티쏘 등 주요 시계업체들이 '차세대 기대주'들을 들고 나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계 브랜드인 로만손도 고급 라인을 재정비해 글로벌 무대에 올랐다. 이들 업체가 바젤월드에서 선보인 20만~30만원짜리 패션시계부터 10억원이 넘는 명품시계들은 순차적으로 한국으로 공수돼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게 된다.

◆클래식 디자인이 대세

올해 바젤월드에서 가장 두드러진 트렌드는 '네오 클래식'이다. 업체마다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클래식 모델을 재해석한 제품을 선보였다. '모던 타임즈 바이 해밀턴'이란 컬렉션을 선보인 해밀턴이 대표적인 예.이 브랜드는 1940년대에 만든 해상용 시계를 재해석한 제품과 1960년대풍의 얇고 심플한 디자인 모델을 내놓았다.

브라이틀링은 대표 모델인 크로노맷01을 업그레이드한 '크로노맷 GMT'를 공개했다.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한 두 번째 무브먼트(동력장치)를 탑재했다. 1952년 선보인 베스트셀러 '내비타이머'에 2년여 전 자체 개발한 1호 무브먼트를 장착한 신제품도 선보였다. 태그호이어는 브랜드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까레라에 고전적인 디자인을 결합한 '까레라 헤리티지 컬렉션'을 출품했다. 시계판과 케이스에 음각으로 무늬를 새긴 뒤 에나멜로 코팅하는 '플란케' 기법을 적용,섬세한 고전미를 살린 게 특징이다.

티쏘도 기존 베스트셀러를 업그레이드한 모델을 선보였다. 이 회사의 첫 다이버 워치였던 씨스타를 '씨스타 1000'으로 변신시켰다. 씨스타 1000은 바닷속 깊은 곳에서 시계가 압력을 받을 때 생기는 헬륨 가스를 자동으로 빼내주는 기능을 장착했다.

◆세라믹 등 신소재 인기

소재에서는 세라믹이 유행처럼 번지는 모습이다. 보수적인 롤렉스도 시계 테두리를 세라믹 소재로 덮은 모델(데이토나)을 내놓았다. 세라믹은 웬만해선 흠집이 나지 않고,광택이 잘 나는 게 장점이다. 세라믹 전도사인 라도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세라믹 시계인 '트루 신(thin)'을 선보였다. 두께(쿼츠 기준)가 남성용은 5㎜,여성용은 4.9㎜에 불과하다. 샤넬은 티타늄 세라믹으로 시곗줄과 케이스를 만들어 은은한 회색을 띠는 'J12' 모델을 공개했다.

오메가는 '레이디매틱' 모델에 들어간 밸런스 스프링을 실리콘 소재로 만들었다. 실리콘은 자성이 없기 때문에 일반 부품을 사용할 때보다 오차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위블로는 검정색을 띠는 탄소섬유로 시곗줄부터 시계판과 케이스를 제작한 '빅뱅 올 블랙 카본'을 선보였다.

◆눈길 끄는 신기술

율리스나르덴은 시계의 핵심 부품인 앵커와 이스케이프먼트를 다이아몬드로 코팅한 실리시움(규소의 부산물)으로 만든 제품을 선보였다. 일반 기계식 시계는 마찰로 부품이 마모되는 것을 막기 위해 3년마다 윤활유를 넣어줘야 하지만 이 시계는 그럴 필요가 없다.

쇼파드는 올해 바젤월드에서 L.U.C 컬렉션의 새로운 라인으로 'L.U.C 콰트로'를 내놓았다. 세계 최초로 4개의 배럴(메인 태엽을 담는 원통형 톱니바퀴)을 탑재했다. 배럴 수가 일반 시계보다 2배 이상 많은 덕분에 태엽을 끝까지 감으면 9일 동안 끊김없이 작동한다.

패션시계 디젤은 온도에 따라 시곗줄의 색상이 변하는 제품을 공개했다. 녹색 시곗줄을 20초 동안 잡고 있으면 체온에 의해 온도가 오르면서 노랑색으로 바뀐다. 붉은색 줄은 흰색으로,보라색 줄은 남색으로 변한다. 온도가 떨어지면 원래 색으로 되돌아온다.

시티즌의 '에코 드라이브 위성 웨이브'는 시간과 날짜 신호를 지구 밖에 있는 위성에서 받는다.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예컨대 해외 여행을 떠나도 현지 시간에 맞춰 시계를 조작할 필요없이 자동으로 시간이 변경된다.

바젤(스위스)=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