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동북아시아 해상권을 장악한 '해상왕' 장보고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어릴 적부터 활을 잘 쏴서 '활 잘 쏘는 아이'라는 뜻의 '활보'로 불렸다. 비단 장보고뿐 아니라 역사 속 영웅들의 전기를 보면 "어릴 적부터 활과 무예에 능했다"는 구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언젠가 궁장(弓匠) 기능보유자가 활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예술적으로 정교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었다. 전쟁터에서 우리 군사들의 목숨을 지켜줘야 하니 무게나 각도 어느 하나 소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정 자체가 예술이구나!" 감탄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능보유자에게 한없는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됐다.

한국에 기능전승자들이 사라지고 있다. 고령화도 문제이지만 더 큰 위기는 이 분들의 기술을 전승받을 교육자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기술을 넘겨받지 못하면 결국 문화재 명맥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우리는 소홀히 여긴다.

'기술'을 통해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때론 기술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 된다. 오랜 시간 정성껏 손과 손으로,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이것은 장인정신이 없으면 빛을 발하기 힘들다.

언제부터 '장인정신'이 퇴색된 걸까? 무형문화재 관련법이 시행된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지나치게 원형 유지만 강조한 면이 있었다. 기능전승자들에 대한 사회적 예우와 처우도 한없이 모자랐다.

장인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장인들 스스로가 자부심을 가지고 명예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금전적 지원 측면을 넘어 우리 장인들이 마음껏 예술 혼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전통문화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예술작품으로 승화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이제 전통이 현대를 만나야 한다. 기능전승자와 디자이너들이 만나야 한다. 전통시장이 현대 마케팅을 만나야 한다.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통풍구 위에 있던 마릴린 먼로의 각선미를 살려줬던 것은 페라가모 샌들이었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페라가모 구두의 명성은 창업자의 끈질긴 장인정신과 현대 인체과학 기술의 합작품이다.

과거 활은 적의 침범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지켰다. 이제 그 활이 방식은 다르지만 또 다른 형태로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예술작품으로서의 활은 한민족의 문화적 우수성을 알려 우리 민족성을 지켜줄 것이다. 문화 강국으로의 품격을 제고시켜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을 지켜줄 것이다. 자존감을 지켜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브랜드 파워다. 활은 이제 무기가 아닌 예술작품이 되어 우리네 가슴을 겨누고 있다.

나경원 < 한나라당 국회의원 nakw@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