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한 지 얼마 안되는 산모가 아파트 고층에서 투신을 하거나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는 사건이 TV에 보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는 생후 몇 달 되지도 않은 아이를 직접 살해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러 놓고 함께 자살하는 사례도 있다. 도대체 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들 사건의 뒤에는 ‘산후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자리잡고 있다. 산후 우울증이란, 산모가 출산 후에 겪는 우울감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산모의 10명 중 5~8명이이런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한다. 자신이 힘들게 낳은 아기가 하나도 예쁘지 않고, 기분이 푹 가라앉아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하는 등 비관적인 생각에 시달린다. 심하면 식욕을 잃거나 불면증에 걸리는 일도 있다. 이런 증상은 분만 후 3~10일 경에 많이 나타난다. 특히, 모유를 먹이지 않는 여성일수록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2주 이내에 증상이 사라지면서 정상적인 정서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고 한다. 가벼운 감기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증상인 것이다. 그러나 1000명 중 1명의 경우는 심한 우울증으로 이행되어 증상이 수개월간 지속되기도 하고 이런 과정에서 육아에 대한 부담, 아이에 대한 미움과 죄책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결국 비극적인 사건으로 치닫는 일이 일어난다. 극단적인 일은 피한다 해도 향후 만성화된 우울증으로 고착화될 수 있어 조속한 치료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산후 우울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출산과정에서 생긴 스트레스와 호르몬 변화, 부모 역할에 대한 부적응, 신체 변화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인류 역사 이래로 되풀이 되고 있지만 여성 개인에게는 매우 사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임신과 출산을 통해서 겪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가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밖에 없고 이 과정이 순탄치 않으면 더욱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또한 출산 후에 급격하게 달라지는 호르몬 변화가 산모의 정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해주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수치가 출산한 지 3~4일 후에 1000분의 1로 낮아지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여기에 기분을 복돋아주고 안녕과 행복을 지원해주는 등 만족감을 높여주는 호르몬인 세로토닌과 도파민을 억제하는 ‘모노아민 산화효소 A(monoamine oxidase A, MOA-A)’는 출산 후에 급격히 높아진다. 즉, 출산 3~4일 후가 되면 즐겁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이 급격히 낮아지고 대신 이들 분비를 억제하는 효소가 급격히 많이 분출되면서 부정적 감정을 강하게 느끼는 정서 상태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산후 많은 여성들이 슬프고 괜히 화가 나고 불안한 감정 상태에서 식욕 저하, 의욕 상실 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감정 상태에서 육아에 대한 불안, 부모 역할에 대한 부적응, 산욕기의 불편한 몸 등이 부정적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남편이나 주변 가족들의 세심한 보살핌이 결여되고 가족간의 갈등, 경제적인 궁핍 상황 등이 가중된다면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산후 우울증이 결국 깊은 우울증으로 이행될 수 있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산후 우울증, 치료는 어떻게 할까? 대다수의 산모가 겪는 산후 우울증은 2주 정도면 사라지기 때문에 특별한 치료가 필요 없다. 몸이 회복되면서 비교적 아기를 잘 돌보게 되고, 아기 키우는 재미를 느끼다 보면 곧 극복하게 된다. 그러나 2주 이상 증세가 지속되면 전문 의료기관을 통해 산후 우울증인지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산후 우울증이 치료되지 않으면 아기를 잘 돌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주변 가족과 지속적인 갈등을 일으키면서 가족 모두가 불행해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산후 우울증은 일반 우울증에 준하여 치료하게 되며 상담과 약물 치료 혹은 가족 치료를 받게 된다. 산후 우울증, 예방이 중요하다. 우선,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산후 우울증을 빨리 해소하고 중증 우울증으로 이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세심한 관심과 보살핌이 가장 중요하다. 호르몬의 변화로 감정이 불안하고 부정적일때는 가족간의 솔직하고 따뜻한 대화가 보약이 된다. 특히, 육아 경험이 있는 친정 부모나 시부모가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격려해주면 산모의 불안을 줄여줄 수 있다. 이 때 남편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임신, 출산을 겪은 아내의 수고를 잘 이해하고 힘들더라도 아기 돌보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우울한 아내의 마음을 잘 받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산모의 수면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우울증 증세가 커질 수 있으므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수면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산모 스스로도 평소 충분한 영양섭취와 휴식으로 피로를 이겨내고 주변사람들과 어울리며 생활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친한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대화를 나누고, 자녀 또래의 엄마들과 교류하면서 육아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많을수록 산후 우울증은 빨리 해소된다. 비록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남편도 산후 우울증을 겪는다는 통계가 있다. 아내의 산후 우울증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의 책임감, 익숙치 않은 아기 돌보기에 대한 스트레스 등이 작용한 탓이다. 이런 경우, 아내에게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를 하면서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주변 가족으로부터 양육에 대한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육아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부부가 같이 외출을 하고, 친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기분 전환을 하는 것도 좋다. (글 / 인권분만연구회 회장 산부인과 전문의 김상현) 장익경기자 ikjang@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