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형 신도리코 회장(55)은 '3무(無) 경영'을 1986년 대표이사 취임 이래 24년간 줄곧 지켜오고 있다.

3무란 무적자,무차입,무어음을 뜻한다. 탄탄한 경영으로 적자를 보지 않고,무리하게 욕심을 부려 차입을 하지 않으며,거래 상대방에게 제때 현찰로 대금을 지급해 신용을 지킨다는 3무 경영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지켜졌다. 신도리코는 1960년 창사 이후 50년간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지금도 부채비율 제로를 유지하고 있다. 거래 대금을 협력업체에 한 달 내에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으면 담당 직원에게 책임을 물을 정도다. 정통 개성상인인 창업주 고(故) 우상기 회장의 경영 방침이기도 했던 이 원칙은 우석형 회장대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우 회장은 무차입 경영에 대해 "최고경영자(CEO)는 빚이 없어야 회사의 핵심 역량인 전략이나 인재 육성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입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재무 문제에 신경이 분산되고 은행과의 관계 유지에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 회장은 1980년 신도리코 기획실장으로 입사했다. 군 장교로 복무를 마친 바로 그 다음 날,고 우상기 회장이 회사에 나와 일을 배우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우 회장은 22년간 부친과 함께 일하며 개성상인의 정신을 체득했다고 한다.

[茶山 경영상] 창업 경영인 부문 ‥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
개성상인의 전통 가운데 하나가 한우물 경영이다. 우 회장은 다른 기업들처럼 토지를 사들이고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대신 사무기기 사업의 기술 개발과 투자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신도하이네트 신도휴스템 등 7개 계열사 모두 사무자동화 관련 회사다. 각종 소비자 조사에서 신도리코는 인지도,브랜드 만족도,애프터서비스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982년에 세운 기술연구소는 현재 260여명의 석 · 박사급 연구원들이 근무하는 업계 최대 연구개발(R&D) 센터로 성장했다. 전 직원 가운데 19% 정도가 연구인력이다.

신도리코의 해외 진출은 일본 리코,미국 렉스마크 등 사무기기 업체들로부터 제품 개발을 의뢰받아 설계-생산-납품으로 이어지는 ODM(주문자설계생산)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 해외 매출 비중은 70% 정도다.

우 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다. "기업의 최대 자산은 사람"이고 "직원은 내부의 고객"이라는 얘기다. 우 회장은 해외 출장 등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점심을 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같이 먹는다. 자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이름과 성격,특기까지 꼼꼼하게 파악하고 있다. 신입사원 채용 때도 따로 시간을 내 입사원서를 모두 훑어본다. 우 회장은 매월 첫째날 월례 경영설명회를 통해 경영 현황을 직원들에게 먼저 공개한다. 아산과 칭다오 공장을 방문할 때는 직급별로 돌아가며 직원들과 술잔을 기울인다. 덕분에 신도리코는 지금까지 한번도 노사분규를 겪지 않았다.

신도리코의 탄탄한 영업망과 기술력은 상호 신뢰와 협력의 결과물이다. 1996년 영업 조직을 직접 관리에서 대리점을 통한 간접 경영으로 전환했다. 대리점 개설은 영업사원들이 자원해 '분가(分家)'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본사는 영업망을 인계하고 운영자금을 지원하면서 이들의 안착을 도왔다. 각 대리점이 채용하는 영업사원 교육도 본사가 직접 챙겼다. 이후 각 대리점 직원들이 경험을 쌓고 새로 대리점을 내면서 영업망이 확충됐다. 이런 방식으로 구축된 영업망은 다른 경쟁 업체들이 뚫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도리코는 다음 달 7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우 회장이 1980년 입사했을 때 100억여원에 불과했던 신도리코의 매출은 이제 1조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신도리코는 향후 글로벌 초일류 사무기기 업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 회장은 "이제 신도라는 자체 브랜드로 중국 시장을 공략,초일류 기업의 반열에 오르겠다"고 미래 청사진을 밝혔다.

조귀동/허문찬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