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 리그전이 끝나가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대회에서도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우승 전력이 있는 프랑스를 남아공이 2대1로 이기는가 하면 잉글랜드는 알제리와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유럽 챔피언 스페인은 조별 리그 1차전에서 `축구 소국' 스위스에 1대0 패배를 당했다.

CNN은 지금까지 진행된 조별 리그전 가운데 북한과 함께 2천 대 1의 우승 가능성이 점쳐졌던 뉴질랜드가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와와 1대1로 비긴 것이 가장 눈길을 끈다고 23일 보도했다.

프로축구 리그도 없는 뉴질랜드는 예선에서 바레인, 피지, 바누아투, 뉴 칼레도니아 같은 약체 팀을 물리치고 본선 진출 자격을 얻었다.

이탈리와와 역사적인 무승부전에서 뛰었던 배런은 투자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마추어 선수로, 사장이 휴가를 내줘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CNN은 "배런과 그의 동료들이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 가장 놀라운 충격을 안겨줬다"며 지난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대회 이후 `10대 이변'을 선정해 보도했다.

△북한 1:0 이탈리아(개최지 영국.개최연도 1966)
신비롭고 비밀에 싸인 나라 북한 팀이 영국에 도착했을 때,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지만, 이들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언론은 이들에게 "알 수 없는 사내들"이라고 별명을 붙여줬다.

북한 팀이 영국에 온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최근 공개된 영국 외무부 자료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할 뻔했다.

그러다가 발급해줬는데 믿을 수 없게도 북한이 이탈리아를 1대0으로 물리치고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8강까지 진출했다.

당시 골을 넣었던 박두익 선수는 그때 출전했던 북한 선수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천리마 축구단(The Game of Their Lives)'에서 "축구가 꼭 이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며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았는데 축구를 통해 외교관계를 개선하고 평화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북한은 포르투갈에 3골 차로 앞서가다 5대3으로 패해 이탈리아전 승리가 빛이 바랬다.

한편 이탈리아 선수들은 귀국 때 썩은 과일로 `맹폭' 당했다.

△미국 1:0 잉글랜드(브라질.1950)
영국인들은 우체부, 교사 등으로 구성된 미국 팀에 대한 승리를 과신했다.

전신을 타고 1대0 패배소식이 전해지자 신문 체육면 편집자들은 오타가 난 걸로 여겼다.

10대0 승리에서 `1'자가 빠진 것 아닐까 미심쩍어했으나 패배는 사실이었다.

그 때까지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충격적 사건이었다.

이 게임에서 유일한 골을 성공시켰던 조 가엣젠(Joe Gaetjen)은 아이티 출신인데 몇 년 후 행방불명됐다.

악명높은 두발리에가 집권하고 있을 때였는데 암살단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다.

대회 기간 내내 영국 팀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미국 팀이 귀국했을 때 거의 아무도 그 업적을 알아주지 않았다.

당시 수비수였던 월터 바르는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만났던 유일한 사람이 내 아내였다"며 "신문도 보도하지 않았다.

필라델피아 신문만이 2인치짜리 칼럼을 게재했는데 지금도 그것을 갖고 있다.

25년이 지나도록 그 승리에 대해 인터뷰한 사람이 내가 유일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아직도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서독 3:2 헝가리(스위스.1954)
결승전에서 커다란 이변이 일어났다는 게 좀 이상하지만 1954년 스위스대회의 경우는 월드컵 사상 가장 이상한 결승전을 치렀다.

2차대전 종전에 따른 정치.경제적 후유증으로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독일 팀은 헝가리의 축구영웅 페렌크 푸스카스가 이끄는 세계 최강팀과 결승전에서 맞붙어 승리했다.

앞서 두 팀은 1차 리그에서 겨뤘는데 그때는 헝가리가 8대3으로 대승했다.

독일이 승리하자 감춰져 있었던 독일인들의 자부심이 되살아났고 역사학자 요아힘 페스트는 그 경기를 '미래 독일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까지 말했다.

페스트는 "(그 승리를 계기로) 2차대전 후 독일인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됐다"며 "1954년 7월 4일은 어떤 측면에서는 독일공화국 건국일"이라고 책에 썼다.

이 승리를 "베른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게 놀랄 일이 아니다.

△한국 2:1 이탈리아(일본 한국.2002)
2002 월드컵에서 공동개최국 한국 팀에게 거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네덜란드 출신의 명감독 거스 히딩크의 지도를 받은 한국 팀은 4강까지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한국의 이탈리아전 승리는 논란이 있었고 누구든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탈리아 팀은 완벽한 골을 넣었으나 노골을 선언당한 뒤 안정환 선수의 골든 골로 나가떨어졌다.

이탈리아 세리에 A리그 페루자 소속이었던 안정환 선수는 성난 이탈리아 팬들의 압력으로 방출되고 말았다.

페루자 구단주 루시아노 가우치는 "나는 이탈리아 팀을 망친 사람 누구에게도 돈을 줄 의사가 없다"고 이탈리아 언론에 밝혔다가 나중에 사과했다.

안정환 선수도 페루자 팀 합류를 거부한 뒤 곧 일본 J리그로 갔다.

△스페인 0:1 북아일랜드(스페인.1982)
1982년 스페인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북아일랜드는 그때까지 결승 진출국 가운데 가장 작은 나라였다.

그런데다 북아일랜드 최고의, 그러나 변덕스러운 축구스타 조지 베스트마저 복귀 요청을 거부했다.

그래서 두 팀이 조별 리그에서 만났을 때 북아일랜드의 패배는 예정된 듯이 보였다.

그러나 북아일랜드팀은 한 명이 퇴장당한 가운데서도 게리 암스트롱이 고군 분투해 8강까지 올라간 뒤 스페인과 결승에서 맞붙었다.

미드필더 토미 카시디는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우리는 환호하지 않았다.

그저 황홀한 기분으로 10초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며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믿을 수 없었다.

우리가 스페인을 그들의 뒷마당에서 이기다니,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세네갈 1:0 프랑스(한국 일본.2002)
프랑스 팀이 내분으로 자기파멸을 초래하고 있으나 이전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1998년 고국땅에서 우승할 야망에 부풀어 있던 브라질을 3대0으로 물리쳤고 이어 2년 뒤에는 유럽 챔피언에서 우승했다.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한 프랑스는 너무 자신만만했다.

첫 게임에서 `하찮은' 세네갈을 만났다.

그러나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고 `레 블뢰(프랑스 팀)'의 영웅 패트릭 비에이라의 출생지이기도 한 세네갈은 극적으로 1대0 승리를 거뒀다.

비에이라는 "세네갈과 개막전은 끔찍했다"며 "뛰어난 선수 한 명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들떠서는 안 된다"고 국제축구연맹 웹사이트에 글을 남겼다.

△아르헨티나 0:1 카메룬(이탈리아.1990)
약체팀으로 여겨지는 아프리카 팀에게 패배한 것은 프랑스만이 아니다.

1990년 디에고 마라도나가 미드필더로 뛰던 아르헨티나 팀은 거친 몸싸움과 정교한 기술로 카메룬 팀을 상대했다.

마이애미 헤럴드 지는 카메룬을 "보잘 것 없는 전적을 가진 시시한 팀"이라고 했지만 오래지 않아 "불굴의 사자"들은 그들의 축구 역사에 새로운 장을 쓰기 시작했다.

카메룬 승리는 축구 역사에서 기억할 만하다.

아르헨티나 스트라이커 클라우디오 카니쟈를 거칠게 태클한 것 등으로 레드 카드 2장을 받기도 했지만 그 경기는 카메룬 선수 매싱의 축구화 한 짝이 벗겨져 날아가버릴만큼 격렬했다.

마라도나는 "카메룬 선수가 내 머리를 칠 뻔해 프리킥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이란 2:1 미국(프랑스.1998)
미국 팀이 세계 축구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적은 없다.

그러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미국이 4년 전 월드컵 개최국으로 누렸던 이점을 계속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과 `지정학적 감정 싸움'에 휘말려 들어갔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시합 전 화해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이란이 2대1로 승리했을 때 테헤란 거리에는 1백만 명이나 몰려나왔다.

아야톨라 호메이니 장례식 이후 최대 인파였다.

당시 이란팀 주장 알리 다에이는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미국에 이기는 것이었다"며 "그래서 2회전 진출을 위한 독일과의 경기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팀 다 조기 귀국했다.

△페루 3:1 스코틀랜드(아르헨티나.

1978)
항상 낭패를 보게 마련이라는 것은 스코틀랜드 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스코틀랜드 팬들은 앨리 맥레오드 감독과 케니 다글리쉬 등 뛰어난 선수들이 포진해 있어 월드컵 우승컵을 들고 귀국하리라고 믿고서 곧 승리자로 돌아올 이들을 환송했다.

그 영광의 첫 제물은 남미의 `송사리' 페루가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페루는 스코틀랜드에 선취점을 내주고도 세 골을 작렬시켰다.

설상가상으로 윌리 존스턴은 시합 후 실시된 약물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불명예스럽게 귀국해야 했다.

그 이후 아무도 월드컵에서 스코틀랜드의 활약 가능성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브라질 1:2 우루과이(브라질.1950)
브라질이 1950년 모국땅에서 개최된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일부 남미 신문들은 전반전이 끝나고서 브라질 승리를 보도했다.

브라질 팀은 전반전을 우루과이에 1대0으로 앞서고 있었으나 후반전 들어 2만 관중들은 2대1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이렇게 되자 문제가 생겼다.

승리의 금메달이나 축가도 이미 브라질 승리를 예상하고 만들어버렸던 것.
"1950년 우루과이에 패배한 것은 히로시마 참극에 비견할 만한 대참사였다"고 소설가 넬슨 로드리게스는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ci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