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1억640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으며 모든 것을 버린 '백의종군 경영'을 평가받은 박병엽 팬택 부회장(48 · 사진)의 삶은 한마디로 '롤러코스터'였다. 그는 1991년 1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4000만원으로 무선호출기 회사를 설립,연간 매출액 3조원대 휴대폰 제조회사로 키웠다. 주식 가치가 한때 4000억원대에 달하면서 '샐러리맨 신화'로까지 추앙받았다.

◆워크아웃을 '패자부활'의 기회로

급성장 뒤에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내리막도 겪었다. 2006년 한 해에만 4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면서 2007년 4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야 했다. 한순간에 신화의 주인공에서 생사(生死)를 걱정해야 할 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급속한 쇠락에 망연자실하는 대신 워크아웃을 '패자부활전'의 기회로 삼았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2007년 3분기 이후 10분기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평균 영업이익률도 8.4%로 끌어올렸다. 성장기보다 위기 속에서 박 부회장의 진정한 경영능력이 더 잘 발휘됐다는 게 채권단 안팎의 평가다.

박 부회장은 워크아웃과 함께 한때 4000억원대에 달했던 주식을 모두 채권단에 넘겼다. 대주주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서 팬택 회생에 기여할 방법을 찾아 나선 것.그해 겨울 박 부회장은 10여개 은행과 100여명의 소액채권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워크 아웃 동의를 끌어냈다.

가차없는 구조조정도 실시했다. SK텔레텍은 물론 적자투성이 기업 현대큐리텔을 인수했을 때조차 단 한 명도 구조조정하지 않았지만,위기 앞에선 핵심 측근까지 내보내는 차가운 결단력을 보여줬다. 휴일 구분도 없이 일에 매달렸다. 토요일에는 밀린 일을 챙기고 일요일에는 월요일 회의 준비를 했다. 최고경영자가 휴일에도 나와 일하니 임직원들도 주말을 반납하며 고통에 동참했다.

◆"팬택 보란 듯이 살려낼 것"

헌신과 노력을 인정해 미국 퀄컴사는 지난해 말 팬택에서 받을 로열티를 출자전환을 통해 지분 투자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팬택의 채무 2000여억원을 자본금으로 추가 출자 전환해 성사시킨 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의 합병도 국내 기업 경영 역사에서 극히 드문 사례라는게 업계의 평가다. 팬택계열이 그 만큼 채권단으로부터 경영성과를 인정 받았다는 얘기다. 채권단 관계자는 "회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를 직접 설득해 워크아웃 협약을 성공시키고,퀄컴과 로열티 협상을 성공적으로 벌여 대금을 주식으로 지급하는 등 많은 난제를 해결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박 부회장의 다음 목표는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장 기조를 만드는 것이다. 기업 전 부문에 걸쳐 30% 이상 효율성을 높여 2013년 휴대폰 판매 2500만대,매출 5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위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성장의 기반을 닦는 게 필수라는 생각에서다.

박 부회장은 12일 열린 주총에서 "글로벌 기업인 애플과 구글 등 새로운 경쟁자와 생존 싸움을 해야하는 등 앞으로도 녹록지 않은 난제를 헤쳐나가야 한다"며 "회사 설립자로서 올해는 팬택이라는 기업을 보란 듯이 살리는 해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