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연극을 만드는 이들은 말한다. "수없이 파리를 날리고도 신작을 올릴 때면 늘 극장 앞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꿈을 꾼다. " 하기야 그렇지 않으면 누가 빚을 내 다시 작품을 만들겠다고 할까. 하지만 제아무리 잘 만들어도 관객이 봐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러니 어떻게든 관객을 끌어모으려 내용과 별 상관없는 야한 포스터도 찍고,온갖 화젯거리를 퍼뜨리고 심지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인터넷에 평도 올린다. 뜨느냐 못뜨느냐가 작품의 수준이나 완성도에만 달린 게 아니라 마케팅에 크게 좌우된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책을 만드는 출판사나 저자도 마찬가지다. 학술 · 전문 서적이면 모르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을 내는 경우 다들 베스트셀러를 꿈꾼다. 현실은 그러나 어림도 없다. 1000만명이 드는 영화가 있는 반면 10만명도 못채우는 영화가 부지기수인 것처럼 1000권도 안팔리는 책이 수두룩하다.

'2009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2008년 신간은 4만3099종,발행 부수는 1억651만5675부다. 2009년엔 3만6558종 8960만권에 그쳤다. 얼핏 보면 1종당 평균 2450권 정도 발행된 듯하지만 발행부수는 이전에 나온 책을 모두 합한 것이니 신간 발행 부수는 이에 훨씬 못미친다.

객관적인 사정은 이렇지만 책 역시 영화처럼 히트작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킬러콘텐츠 상품이다. 1000부는커녕 500부도 안팔리는 책이 허다한 반면 떴다 하면 몇십만부가 나갈 수도 있다. 어느 순간 화제가 돼 티핑포인트를 넘기면 저절로 대박이 터지기도 한다는 얘기다.

뜨는 점이 어디일진 아무도 모른다. 단 영화에서 초기 관객 숫자가 중요하듯 책 역시 초반 판매부수가 영향을 미친다. 베스트셀러로 선정되면 뉴스가 되고 뉴스가 되면 입소문으로 번져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가 출판사 4곳을 사재기 혐의로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하면서 책 사재기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주식의 경우 '터무니없이 비싼 건 있어도 괜히 싼 건 없다'고 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내용보다 마케팅으로 승부한 책이 시장을 독점하면 공들여 만든 책은 설 자리를 잃는다. 베스트셀러에 쏠리는 독서 행태만 문제 삼을 게 아니라 베스트셀러 집계방식을 바꾸고 처벌도 강화해야만 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