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1일 오전부터 철도노조와 전국공무원노조(옛 통합공무원노조) 사무실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하는 등 노동계를 향한 압박의 강도를 한층 높였다.

철도노조의 이번 파업을 놓고 불법성 여부를 검토해온 검찰은 최근 `불법 파업'이라고 잠정 결론내고 경찰과 함께 신속한 수사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검.경의 이 같은 스탠스 변화는 `공공부문 노조의 불법 행위에 엄정 대처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이후에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서 철도노조의 파업을 심각한 문제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불법행위에 대해 원칙을 갖고 엄정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노동계를 향한 정부의 강공은 사실상 강경투쟁을 주도해온 민주노총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무임금이란 현안을 놓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민노총은 12월 `동투(冬鬪)' 계획에 차질을 우려하면서 정부의 강공에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당분간 `노정(勞政) 갈등'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 최대 현안을 둘러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간의 공조에도 균열 조짐이 생겨 연말 노동운동에 지형변화가 예상된다.

◇ 정부, 노동계 강공 드라이브 =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날 오전 6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영등포구 영등포동 전국공무원노조 본부 사무실과 서울지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용산경찰서도 이날 불법 파업을 주도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용산구 한강로 철도노조 본부와 서울지방본부 노조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에 앞서 경찰은 전날 파업 주동자 검거 전담반을 편성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기태 위원장 등 철도노조 집행부 15명에 대한 검거에 나섰다.

경찰이 이날 노동부에 노조설립 신고를 앞둔 전국공무원노조와 엿새째 파업 중인 철도노조에 '압수수색'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은 정부의 기조가 불법 노조단체와 파업에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경은 철도노조의 파업에 따른 손실 규모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정부의 경제회생 정책에도 타격이 우려된다고 판단, 강공 모드로 신속히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철도노조의 파업이 불법파업인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해온 검찰이 이 대통령의 언급 이후 `불법 파업'이라고 사실상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철도노조의 파업 장기화에 따른 화물운송 차질로 국민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무원노조에 대한 압수수색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정부가 민노총이 주도하는 불법시위와 정치투쟁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을 위반하지 말 것을 촉구했지만 공공부문 노조인 공무원노조가 정부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자 법과 원칙을 앞세워 강공책을 꺼내든 형국이다.

◇ 발빼는 한국노총…양대노총 공조 균열 = 노동계를 향한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가 이어지고 있지만 노동계의 축을 이루는 양대 노총의 공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균열은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계 최대 현안에 대해 기존 입장과 다른 새로운 입장을 들고 나오면서 비롯됐다.

장 위원장은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지급 문제와 관련해 시행 유예를 요구하고, 복수노조와 관련해서는 전면 허용이라는 기존 입장을 버리고 경영계 논리와 같은 방식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것.
한국노총이 이처럼 복수노조ㆍ전임자 현안에 대한 공동입장을 깨고 독자적으로 새 입장을 내세우자 민노총은 전체 노동자를 실망시키는 행위라며 연대를 파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양 노총은 그간 복수노조를 전면 허용하되 교섭창구단일화 없이 모든 노조에 교섭권을 주고 전임자 급여지급은 노사 자율에 맡긴다는 공동 입장을 견지하면서 연말 연대 총파업까지 거론해왔다.

한노총 장 위원장의 발빼기는 노동계 양대 현안을 놓고 민노총이 주도하는 강경투쟁에 나설 경우 결국 한노총의 위상 축소라는 결과만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부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을 놓고 볼 때 연말 노정간 구도는 정부-경영계 대 한노총-민노총 구도에서 정부-경영계-한노총 대 민노총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 민노총 "독자 투쟁 불사" = 민노총은 한국노총의 입장변화에도 아랑곳 없이 제 갈길을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노정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노총은 한국노총의 입장 변화에 대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협소한 이해관계를 구하지 않고 당당히 우리의 길을 갈 것이며, 한노총이 투쟁의 대열에서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의 입장 급선회는 양대 노총이 총결집하는 형태의 연말 총파업을 예고해온 노동운동이 민노총 주도의 반쪽짜리 총파업으로 축소되는 등 세결집 측면에서 투쟁동력이 한층 약화될 것이라는 게 노동계 안팎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 들어 노선이 다소 다른 노동운동을 전개해왔던 양대 노총이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라는 최대 현안을 놓고 전술적인 차원에서 손을 잡은 터라 한노총의 이탈로 민노총이 느끼는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노총 관계자는 "오늘 오후에 중앙상임집행위원회를 열어 대응책을 논위하고서 공식 입장을 천명할 방침이지만 현재로서는 독자적으로 투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에서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무임금 현안에 대해 해법을 모색하고 있어 정점을 향해 치닫는 노정 갈등 기류가 극적으로 해소될 전기가 마련될지도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국기헌 기자 penpia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