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국제기준'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정부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25일까지 이 사안에 대한 노사정 6자 대표자 회의가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양측이 각각 '자신의 주장이 ILO(국제노동기구)기준에 부합된다'며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조항을 놓고도 서로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는 식이어서 좀처럼 해법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노동부는 9일 과천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국제노동기준의 취지에 맞는다'고 주장했다. 노동부의 브리핑은 이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여의도에서 '노조 전임자 위상과 국제기준에 관한 세미나'를 열자 "노동계 주장과는 다른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이뤄졌다.

이날 정부 브리핑과 노동계 세미나에 따르면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는 항목은 ILO 협약 135호와 권고 143호다. 협약 135호는 "근로자 대표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 기업은 적절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노동계는 '편의'에 전임자 임금지급이 포함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노동부는 '편의에는 유 · 무상의 근로시간 면제(time-off with or without pay)가 포함된다'며 사측이 전체 노조활동에 대해 임금을 지급할 필요는 없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ILO 권고 143호에 대한 판단도 엇갈린다. 143호는 노조 내부활동을 위한 '근무시간 면제는 임금의 손실 없이 제공돼야 하며,비용 부담의 주체는 국내 법령이나 단체협약 또는 국내 관행에 일치하는 기타 방식을 통해 결정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노동계는 근무시간 면제가 임금 손실 없이 제공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임금을 주기 위한) 비용 부담의 주체가 누구냐에 주목하고 있다. 비용 부담 주체를 국내 법령이나 단체협약 등으로 정하도록 한 만큼 비용부담의 주체를 노조 자체적으로 하도록 결정한 국내 노동조합법은 ILO의 의견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CFA)의 권고 사항을 놓고도 해석이 엇갈린다. ILO CFA는 그동안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법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 정부에 10차례 권고해왔다. 노동부는 하지만 "CFA가 오히려 (비용부담의 주체를 법령 등으로 결정하도록 한) ILO 권고 143호와 정면 배치된다"고 반박했다.

이날 노동계는 세미나를 통해 "전임자 임금지급 주체를 실제 법령으로 정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다른 나라는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안 하는 게 관행이기 때문"이라며 "임금을 사측이 지급하는 것이 일반화된 국내 노사 문화는 제도(법)를 통하지 않고서는 바뀌기 힘들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