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를 동반한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는 세상을 확 바꿔놓았다. 또다른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만 봐도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월가 고액연봉 관행 및 금융감독체계를 바꾸는 등의 노력이 진행되는가 하면 기업들은 또다른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씀씀이를 줄이면서 백지에서 재무설계를 다시 하고 있다.

세상이 바뀐 만큼 최근 들어 기업들의 생존 조건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뒤따르고 있다. 씨티그룹 AIG 제너럴모터스(GM) 등 굴지의 미국 대기업들이 파산위기에서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것을 보고 기업들은 위기에 얼마나 취약한지 느끼게 됐다. 수익을 내는 것보다 위험(리스크)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이 같은 맥락에서 위기 이후 리더십 재구축에 나서는 등 위기에서 얻은 교훈을 경영에 적극 반영하려 하고 있다. 리더십은 집단(회사)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집단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능력이다.

최근 뉴욕주 오시닝시에 있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크로톤빌연수원에 갔을 때 GE가 새로운 환경에 맞는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찾기 위해 엄청나게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위기 전에는 워크아웃,6시그마,변화가속도 프로세스 등 조직문화를 바꾸는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GE가 곤욕을 치른 뒤로는 변화와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깊은 상처를 입었던 만큼 지금까지의 가정(assumption)으로는 또 다른 위기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교육과정에서 구성원 간 솔직한 평가와 피드백을 중시하고 있다는 게 수잔 피터스 GE 최고교육책임자의 설명이다. 크로톤빌 리더십 교육내용이 바뀐다는 것은 GE 경영 관행에 상당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

금융위기를 촉발한 장본인으로 뭇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월가 금융사들도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과도한 리스크를 관리하고 책임 있는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을 더 많이 영입하려는 움직임이다. 웨스트포인트가 포브스 선정 올해 미국 1위 대학에 올라서만이 아니다. 사관학교 출신들은 규율이 강한 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지 헤드헌터들은 군 복무를 마치는 사관학교 출신들과 교섭에 나서고 있다.

월가 금융사에는 파생상품 등 특정 금융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은 많지만 자칫 모래알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 같은 약점을 깨달은 월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균형과 질서의식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더 많은 사관생도를 영입하려고 나선 것이다.

워런 베니스 남캘리포니아대 경영학 교수는 "군사교육에서 익힌 사관생도의 리더십은 월가 금융사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수익원 창출과 함께 위기 후 바람직한 리더십 모델을 찾는 게 글로벌 기업 CEO들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뉴욕=이익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