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경 전 헌법재판소 주심재판관은 최근 정치권을 강타한 세종시 논란은 이미 행정복합도시 추진 당시부터 예견됐던 일이라고 밝혔다. 국민 의견 수렴 과정이나 미래를 내다본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계획없이 다분히 표를 의식한 불순한 정치적 동기가 출발점이었던 만큼 수정론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는 것이다.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결정 당시 주심을 맡았는데 그때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주심을 맡은 사람 외에는 다른 재판관이 주심 맡은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다. 당시 수도 이전 위헌 자료를 쌓아놓으니 내 키보다 높았다. "

▼정치권이 세종시 논란의 블랙홀에 빠지고 있다.

"세종시 논란은 어느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2004년 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 판결이 있고 나서 그냥 넘어가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2005년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이 합헌 판결이 날 때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되겠구나 싶었다. 도시 건설 문제는 법적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으로 국익 차원에서 결정돼야 한다. 따라서 그 해결도 정책적 해결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주민의 이익은 부차적이고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국익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건설 내지는 수정 및 폐지가 결정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세종시 문제가 헌법 제72조 '소정의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인지 여부에 관해서는 이론상 다툼이 있을 수 있으나 회부 여부의 권한이 대통령의 권한임을 염두에 두면 대통령의 통치행위로서 국민투표에 부쳐 그 정당성을 부여받아 그 결과에 따른 결정은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즉 대통령은 통치행위로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고 그 결과에 따라 정책적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현재와 같은 세종시 건설 논란이 불거진 근본 원인은 뭐라고 보나.

"지금도 행정중심복합도시에 정부 부처를 9부2처2청이나 보내는 것에 대해 사실상의 수도 분할이라는 다수 학자들의 의견도 있다.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만든다든지,지금처럼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한다든지 하는 계획은 지역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 충청 표에 영향을 주기 위한 불순한 동기로 출발했다. 정당하지 못한 과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수도는 청와대와 국회가 있는 곳,그리고 나라의 경제 · 문화 중심지를 일컫는 곳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법을 교묘하게 비켜가는 방법을 택해 청와대와 국회를 뺀 나머지 대부분의 행정 기능을 분리하는 정략적인 판단을 했다. 정치적,정략적 접근이 화를 키웠다. "

▼국민투표 논란이 일고 있는데.

"세종시 문제는 국민의 정치적,정책적 판단에 맡겨야 할 사안이다. 엄밀히 말해 국가 안위 사안은 아니다. 미국과 국교를 단절한다든가,북한과 전쟁을 벌여야 할 사안 등이 아니다. 학자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정면으로 다룰 만한 사안은 아니다. 다만 국민 여론이 복잡하고 국론이 분열돼 있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의 통치행위로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

▼국민투표를 하면 수적으로 열세인 충청인들의 의견이 무시된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는 나머지 대다수 지역에서 반대표가 나오면 어떡하겠느냐는 얘기인데.그건 너무나 정략적 접근이다. 국가 차원에서 국익의 문제로 본다면 한 도의 문제로 볼 수 없다. 다만 충청도가 발전하면 반사적 이익에 대한 다른 지역민들의 반감이나 실망감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는 국익 차원에서 봐야 한다. 충청인들이 맹목적으로 반대만 하는 것도 다소 소지역주의에 가깝다. 국익을 봐야 한다. "

▼야당 등의 반대로 세종시 특별법 개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옳지 못하면 법은 언제든 개정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법을 개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국민의 요구가 법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발가벗으면 아무도 뭐라 안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경범죄로 잡혀간다. 우측 · 좌측 통행도 국가별로 다르다. 시대 변화와 국민들의 요구에 따른 국익을 생각한다면 유연성이 필요한 것이지,불변한다는 틀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

이준혁/조성근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