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지난 6월 하루 생산량 13만7000배럴,매장량 5억3000만배럴인 스위스 석유기업 아닥스의 인수를 90% 이상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판에 중국 시노펙이 가세하면서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시노펙은 석유공사보다 3억달러 많은 89억달러를 제시했다.

정부와 석유공사는 막강한 자금동원력을 앞세운 중국과 또다시 맞붙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과도한 인수대금을 제시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전략을 바꿨다. 중국이 관심을 두지 않거나 중국기업의 자국 기업 인수에 거부감이 강한 국가의 기업을 인수 대상으로 삼기로 한 것.8월 초 접촉을 시작한 곳이 바로 22일 인수한 캐나다의 하베스트에너지였다. 석유공사는 이후 배타적인 협상을 통해 생산광구,탐사광구,정유공장 등을 보유한 하베스트를 39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2월 페루의 페트로텍을 콜롬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에코페트롤과 공동으로 인수한 데 이은 두 번째 성과다. 페트로텍의 하루 생산량이 1만2500배럴인 점을 감안하면 하베스트는 그보다 4배 이상 생산량이 많다.

이날 캐나다 캘거리에서 최종 인수계약서에 서명한 김성훈 석유공사 부사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북미지역,그 중에서도 캐나다는 중국 기업들이 자국의 에너지기업을 가져가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다"며 "중국과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캐나다 기업을 공략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중국이 현지에선 자원을 무차별적으로 가져가는 나라,피인수회사에 대거 자국 인력을 보내 일자리를 빼앗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석유공사가 인수한 하베스트는 현재 2억1990만배럴의 확인된 석유 · 가스매장량을 확보하고 있다. 대형 회사는 아니지만 석유 · 가스 생산광구 이외에 10억배럴로 추정되는 오일샌드와 2조~3조입방피트(3500만~6500만t)의 CBM(석탄층에 포함된 메탄가스) 탐사광구도 보유하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이 회사의 전체 인력 가운데 기술력과 경험을 갖춘 석유개발 전문인력 380여명도 향후 석유공사의 해외 자원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관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은 "북미 석유개발 사업의 중심인 캘거리에 거점을 확보해 향후 해외유전 매입과 추가적인 M&A(인수합병)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며 "하베스트 인수로 확보한 오일샌드와 CBM 개발기술은 석유공사가 추진 중인 캐나다 블랙골드 오일샌드 광구 개발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베스트 인수로 석유공사를 2012년까지 하루 생산량 30만배럴 규모의 세계 60위권 중형 석유기업으로 대형화하려는 정부의 계획에도 탄력이 붙게 됐다. 지난해 말 석유공사의 하루 생산량은 5만배럴에 불과했지만 페트로텍과 하베스트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1년새 하루 생산량이 2배 이상(12만5000배럴) 커졌다. 석유공사는 또 다른 기업 인수를 위해 현재 3~4개 기업과 접촉 중이다. 이르면 연내에 세 번째 해외기업을 인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