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현 기자

“우리 의원님은 어느 쪽으로 분류하셨죠?”“어? 그게 아닌데….‘중립’으로 해주세요.”“우리는 아예 표에서 빼주시면 안될까요?”

6월 25~26일 이틀간 국회 정론관(프레스센터)에 자리잡은 한국경제신문 부스(출입기자들이 모여 일하는 언론사별 독립공간)에는 한나라당 소속 개별 의원실에서 걸려오는 문의전화가 하루 종일 끊이지 않았다.본지가 한나라당 소속의원 169명에 대한 계파 분석 기사(6월 29일자 보도)를 싣는다는 소문이 의원회관(각 국회의원 개인 사무실이 모여있는 건물)에 쫙 퍼졌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의원실에서 중립이라고 밝혀 온 경우 전부 그 뜻에 따라 ‘중립’으로 묶었다.심지어 “친이명박(친이) 성향이기는 하지만 중립에 더 가깝다”는 주장까지 고려해 ‘친이성향 중립’이라는 또 하나의 모둠도 만들었다.다만 분류 대상에서 아예 제외해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전수 조사를 통해서 작년 국회 개원 당시와 비교했을 때 계파이동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를 밝혀보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의원들로서는 자신이 특정 계파에 이름이 올라서 신문에 찍혀 나가는 것이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한 보좌관은 “사실 ‘누가 어느 계보라더라’ 정도는 소문으로 다 알려져 있지만 요즘 같이 계파 갈등이 첨예화된 시기에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한다”며 “위에서 끌어주는 분이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됐지 굳이 ‘적’들에게 내가 어느 파인지 알릴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통상 친이계 인사로 알고 있던 의원 중 10여명 이상이 ‘중립’을 선언했다.수도권의 A의원은 “물론 친이계 유력인사 B씨가 나를 정치권으로 이끈 것은 맞지만 지금까지 구태의연한 계보 정치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B씨의 계보로 분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C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에 동의하는게 이른바 ‘친이계’라면 그게 맞다.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 측과 대립각을 세운다는 의미라면 거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요즘은 공천보다 박천이 더 확실하다

반면 취재진이 “친박근혜(친박)계시죠?”라고 물었을 때 중립지대로 옮겨 달라고 요구한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특히 영남권 의원들의 충성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게 피부로 느껴졌다.가까이는 내년 지방선거,멀게는 다음 총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역할을 의식한 움직임일 가능성이 높다.한나라당의 ‘공천(公薦)’보다 ‘박천(朴薦,박 전 대표의 유•무형의 선거 지원)’이 더 세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의원은 "나는 친박인데 왜 중립으로 뺐냐"며 계파 성향이 감춰진 것에 오히려 역정을 내기도 할 정도였다.

여의도 정치의 습성상 지금 중립지대에 있는 의원들 중 일부가 공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여차하면 친박진영으로 대거 유입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일부 의원은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에 걸쳐 약간 어정쩡한 ‘박쥐’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취재진은 계파 분석 도표를 그리던 중 “한쪽에 ‘주이야박(晝李夜朴,낮에는 친이계 밤에는 친박계)’이라는 모둠도 만들어야 하는거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를 나누기도 했다.

친이계의 급속한 분화도 두드려졌다.내홍을 거듭한 끝에 7개 정도의 소계파로 나뉘어지기에 이르렀다.시작은 총선 직후 불거진 친박계 무소속 의원의 복당 문제였다.대권후보 경선 때만 해도 단일대오를 형성했던 친이계는 이 과정에서 이상득 의원이 주도하는 ‘온건파’와 이재오 전 의원이 주도하는 강경파로 나뉘게 된다.

4월 재보선 참패는 타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박 전 대표의 지원없이는 앞으로도 선거 참패가 뻔하다고 판단한 수도권 친이계 의원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대표적인 강경파인 정두언 권택기 김용태 임해규 차명진 의원 등 소위 ‘7인회의’ 멤버들은 박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을 촉구하며 기존 강경파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반면 강승규 조해진 김영우 의원 등 친이 직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48인회’와 친이계 초선의원들이 주축이 된 ‘선초회’는 최근 당내 쇄신논의가 ‘정권흔들기’의 성격이 짙다며 이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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