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럴당 3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국제 유가가 최근 70달러를 돌파하면서 산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석유 사용 비중이 높은 항공 · 해운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지난 3월 이후 원 · 달러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한 숨을 돌렸던 관련업계에서는 "환율보다 유가 상승이 더 무섭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제 기준유종인 서부 텍사스 원유(WTI)는 11일(현지시간) 현재 배럴당 72.68달러까지 치솟았다.

◆"환율 소나기 벗어났더니 이번엔…"

항공업계는 지난 3월 1500원대까지 오른 원 · 달러 환율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항공기 및 유류 도입에 따른 외화부채로 인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환율이 10원 오르면 각각 200억원,78억원의 비용 부담이 생기는 구조여서다. 항공업계가 작년과 올해 1분기까지 적자를 면치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3월 이후 환율이 하향안정세로 돌아서면서 한 고비를 넘기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유가 재상승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석유 가격이 연초 대비 배럴당 30달러 이상 급등행진을 하고 있는 것.대한항공이 연간 사용하는 유류는 약 3100만배럴.유가가 1달러 오를 때마다 연간 400억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한다. 연간 1200만배럴의 유류를 사용하는 아시아나항공은 유가가 1달러 오를 때마다 187억원의 비용이 더 들어간다. 두 회사는 올해 사업계획을 짜면서 올해 배럴당 평균 유가를 60~75달러로 예측했었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안정돼 있고 평균 유가가 연초 사업계획 당시 예상치를 아직 넘지 않아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1달러 오를 때마다 수백억원의 손실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선박 운송 연료로 벙커C유를 사용하는 해운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유가 상승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벙커C유 가격이 국제 유가 상승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현대상선 STX팬오션 등은 선박의 속도를 줄이는 방법으로 연료 소모량을 최소화하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유가 상승 영향으로 선박 연료비용이 다소 상승할 수 있지만,유가 상승 여파로 유조선 운임지수(WS)가 함께 급상승하며 일부 선단의 수익성이 개선돼 유가 상승분을 상쇄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제조업계,"다시 불똥 튀나"

주요 제조업체들 역시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고유가 추세가 장기화되면 실물경기 회복이 더뎌질 수 있어서다. 석유화학업계는 유가 급등에 따른 나프타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 최근 나프타 가격은 t당 600달러선에 근접했다. 석유화학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 가격이 상승하면 유화업체들의 원가는 대폭 올라가는 구조다.

철강업계는 철광석,유연탄 등을 주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유가 상승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권에서는 벗어나 있지만,외국 기업과의 원료가 협상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포스코는 유가 상승 장기화에 대비해 전사적으로 에너지절감 운동에 착수하는 한편,고효율 에너지 설비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전자업계도 원유를 직접 원자재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유가 상승에 따른 원자재 가격 및 물류비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도 원가,생산,판매 등 전 부문에서 영향을 주는 유가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장창민/박민제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