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카리스마의 대명사인 지휘자 '강 마에'가 있다면 LS전선엔 '손 마에'가 있다. '손 마에'는 지난 1월 LS전선의 제1호 전문경영인으로 CEO(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손종호 사장(57)을 두고 직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마에는 지휘자를 뜻하는 마에스트로의 줄임말.직원들은 다양한 악기를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영업 마케팅 개발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회사를 지휘한다는 뜻에서 붙였다고 했다.

"뭐 하나를 하더라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데다 회사 안팎에서 돌아가는 이야기를 죄다 꿰고 있어 옴짝달싹 못한다. "

이쯤되면 무섭고 무뚝뚝한 경영인을 떠올리겠지만 손 사장에겐 정감넘치는 따뜻한 면이 더 많다. 그는 직원들에게 매달 두권의 책을 선물한다. 이번 달에는 '에티켓을 먹고 매너를 읽어라'와 '리더십 에센셜'을 돌렸다. 회사 내부게시판에 손's 북카페 코너까지 만들어 직원들이 올린 서평에 댓글을 달아주는 '독서경영인'이다.

일에도 빈틈이 없다. 스스로를 '소방수'라고 부른다. 2003년 LS그룹이 LG에서 분가한 이후 불끌 '일'이 많이 생겼다. 당시 LS전선을 이끌고 있던 구자열 회장이 2004년 JS전선(옛 진로산업)을 인수하면서 전무였던 그에게 JS전선을 맡겼다. 회사에 가보니 숨이 턱 막혔다. 쓸만한 사람들은 전부 나가고 없었다. 노사문제에 소송까지 겹쳐 질곡이 많았다. 그러나 인수 3년 만인 2007년 유가증권시장에 재상장시키고 매출도 2004년 1600억원에서 지난해 4800억원으로 늘렸다.

JS전선을 일으키자 다음 숙제가 떨어졌다. LS전선을 맡길테니 지난해 인수한 북미 최대 전선회사인 수피어리어에식스와의 통합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현지 직원들은 LS전선이 회사를 재매각해 이득만 취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손 사장은 "우리는 케이블(전선)패밀리다. LS는 통신사업과 전선사업을 잘하는 데 수피어리어에식스는 초고압변압기와 발전기 등에 쓰이는 권선을 잘한다"며 현지 직원들을 설득했다. 그는 "피인수 회사에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서는 동료의식이 중요하다"며 "두 회사의 소통을 늘리는 데 주력한 덕분에 미국 회사가 지난 3월부터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호 전문경영인 자리에 오른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손 회장은 단박에 "지금은 세계 전선업계 3위지만 2015년엔 1위가 되는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선배 전문경영인으로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산고와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6년 금성전선에 입사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