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더'서 열연한 '국민엄마' 김혜자씨
'국민 엄마' 김혜자씨가 변했다. 늘 '자상한 어머니'로 다가서온 그녀가 자식에 대해 집착과 광기를 드러내는 어머니 역을 해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28일 개봉)에서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모자란 아들 도진(원빈)을 구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 역이 그것이다.

그녀는 이 배역으로 최근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찬사를 받았다. 25일 서울 홍익대 근처 한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평범한 엄마라면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자식을 위해 감옥으로 면회가서 뒷바라지를 하는 정도일 거예요. 그러나 극중 엄마는 범인을 직접 찾아나서요. 소도시의 형사와 변호사는 사건 자체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이런 상황에 처하면 모든 엄마들이 뛰어들 거예요. "

그러나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서는 충격적인 행동을 한다.

"한 마디로 거의 미쳐가는 거지요. 오프닝 신이 그런 감정을 담고 있어요. 갈대처럼 흔들리는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니까요. "

인간과 짐승을 오가는 양면성으로 인해 그녀의 엄마 역은 대단히 복합적이다.

아들이 밥먹다 친구를 만난다며 갑자기 뛰어나갈 때 엄마가 그를 따라가며 "빨리와 늦지마"라고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빨리와'는 아들에게 하는 말이고,'늦지마'는 남편에게 하는 말처럼 하라는 게 봉 감독의 주문이었어요. 아들은 그녀에게 남자의 대명사인 셈이죠.아들이란 열달간 뱃속에서 키워 낳은 이성이란 존재죠.마치 그리스 비극 속의 캐릭터를 연상시켜요. "

그녀는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숨은 그림'을 읽어내면 더욱 재미있게 볼 것이라고 했다. 가령 엄마는 집안에서도 양말을 신고 산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금세 뛰쳐나가야 하니까. 그녀에겐 삶 자체가 불안이다.

"도진의 친구(진구)가 저에게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고 말하는 대사에도 복잡한 관계와 느낌이 담겨 있어요. 영화에서는 설명하지 않고 관객의 상상에 맡겨요. 극중 엄마는 아들의 친구에게 싫지만 고마운 감정을 갖고 있어요. 심성이 나쁜 아이니까 싫고,모자란 아들의 유일한 벗이니까 한편으론 고마운 거지요. 세상에는 이런 관계가 많잖아요. "

이런 복잡한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촬영 도중 감독으로부터 어려운 주문을 많이 받아야 했다.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나 "머리를 나사로 돌려 쪼는 느낌" 처럼 연기하라는 요구였다. 감독은 쉽게 말하지만 자신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국민 엄마'라는 데 실생활에선 어떤 어머니인지 물었다. "자식(1남1녀)들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엄마는 아니에요. 내 일이 더 중요한 엄마예요. 자식들이 잘 이해해줘 고마울 따름이죠,자식들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엄마로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배우로서는 더 뛰어나고 싶었어요. "

자녀들을 위해 해주는 일이라면 일 하지 않을 때 외출을 삼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 데 쓴다"고 말했다.

글=유재혁/사진=양윤모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