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외교데뷔 무대 대성공
G20 `트로이카 의장국' 한국도 큰 역할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정도로 포괄적이고 깊이있는 합의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첫 해외순방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낮은 자세로 대화와 협력을 강조함으로써 외교 데뷔무대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우리나라는 G20의 '트로이카' 의장국으로서 의사결정과 진행 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활발한 양자회담을 펼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 갈등 딛고 일궈낸 '역사적 합의' = 이번 G20 정상회의는 개막 직전까지만 해도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사실상 수사만 가득한 공허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으나 각국 정상들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극적으로 합의했다.

이것은 각국 정상들 사이에 세계경제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76년전 런던 세계경제회의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며 이를 위해 반드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도 강하게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이다.

1933년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관리들과 금융가 수천명은 런던에 모여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무려 6주동안 논의했지만 결국 아무런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서 제 살길을 찾아 나섰고 결국 '공멸'을 자초했었다.

이와 함께 사실상 세계 경제의 맹주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전임자인 조지 부시 대통령과는 달리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면서 회의 분위기가 크게 호전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회의에서는 특히 세계경제의 회복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재원을 현재의 2천500억달러에서 7천500달러로 증액하는 등 무려 1조1천억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에 시달리고 있는 동유럽 등 일부 국가들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역금융을 2천500억달러 확대하기로 하고 무역보호주의에 대한 강한 반대 입장을 천명한 것도 세계경제의 위축으로 각국이 보호주의를 통해 각자도생의 길에 접어들 경우 파국을 면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요구했던 국제금융시장의 규제 강화가 사실상 모두 받아들여진 것도 중요한 성과로 간주된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 문제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회의장을 나가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G20이 내년까지 경기부양에 5조달러를 투입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이것은 구속력있는 합의가 아니라 각국의 경기부양책을 '종합 정리'해 놓은 것으로 추가 경기부양 요구를 강하게 반대해 온 독일과 프랑스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는 이번 회의에서 별도 보도자료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MF) 또는 G20 차원에서 새로운 국제 기축통화의 도입을 검토하자고 제안했으나 경제위기 대응에 초점을 맞춘 회의의 성격 때문에 공식 의제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러시아, 중국, 브라질 등은 이번 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 외환보유의 주요 통화인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구상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대체 가능한 수단으로 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제시했었다.

◇ 오바마의 외교무대 데뷔 '대성공' =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유럽을 자신의 첫번째 외교무대로 선택한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과는 완연히 다른 톤으로 얘기했고 각국 정상들도 오바마의 호의에 협력적 태도로 화답했다.

그는 특히 최악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각국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면서도 "듣기 위해 이곳에 왔다", "미국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다"고 몸을 낮추며 화합과 협력을 강조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오는 12월 시효가 만료하는 전략무기감축 협정(START-1)을 대신할 새로운 핵무기 감축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하는 등 부시 행정부 동안 소원했던 양국관계의 재설정에 착수했다.

부시 정권에서 미국은 이란의 핵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동유럽에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을 추진했고 러시아는 이의 포기나 명시적 규제를 핵 감축협상과 연계하려는 태도를 보이면서 그동안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했었다.

양국은 핵무기를 1천500기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담 후 "오늘 우리는 양국 관계에 새로운 진전이 시작됐음을 확인했다"고 말했고,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우리가 서로 적(敵)으로 보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으며 앞으로 양국 관계 발전을 낙관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도 양자회담을 열어 북한과 이란 핵 문제, 수단의 인도주의 문제 등에 대해 협력하기로 합의했으며 인권문제에 관한 협의도 가능한 한 조속히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오는 7월 러시아, 하반기 중국을 방문해 달라는 양국의 요청도 수락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전후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국가 방문도 잇따라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풍성한 양자회담..'외교박람회' 방불 = 오바마 대통령의 잇단 양자회담 외에도 각국 정상들은 이번 회의를 전후해 활발한 접촉을 벌였다.

티베트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후진타오 주석과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예정에 없이 1일 런던에서 전격 회동해 프랑스가 티베트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합의하는 등 양국 관계의 해빙을 이끌어냈다.

후진타오는 사르코지에게 "우리의 오늘 만남은 양자 관계에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불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도록 양국이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또 정상회의에 앞서 별도 접촉을 갖고 금융시장 규제 강화를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양국 정상은 그동안 '스타일의 차이' 등으로 인해 소원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회동을 통해 유럽대륙을 이끄는 양대축으로서 세계적 금융.경제 위기 타개를 위해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르켈 총리는 또 3일 바덴바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별도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 세계 중심국가로 자리 굳힌 한국 = 이명박 대통령도 이곳에 집결한 각국 정상들과 연쇄 회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2일 G20 회의장인 런던 엑셀 센터에서 약 30분간 정상회담을 열어 북한의 로켓 발사,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한미동맹, 보호무역주의 등 대내외 현안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이자 가장 위대한 친구 중 하나"라고 평가했고 이 대통령은 "미국은 지구상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라고 화답했다.

전날에는 영국, 일본, 호주 등과 양자 정상회담을 가졌고 3일에는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회동할 예정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영국, 브라질과 함께 G20 정상회의의 `트로이카 의장국'을 맡고 있어 이번 회의의 의제 선정, 회의 운영, 일정 조율 등에 깊숙이 참여하는 등 세계 중심국가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지 이번 회의에 맞춰 한-EU(유럽연합) FTA의 타결을 선언함으로써 보호무역주의 반대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계획은 마지막 남은 관세환급 문제에 발목이 잡혀 최종 타결에 실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 G20에 드리운 북한 로켓의 그림자 = 금융위기에 초점을 맞춘 이번 G20 정상회의의 의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북한의 로켓발사 문제는 각국의 양자회담 등에서 주요 논의대상으로 떠올랐다.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등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적극 모색키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날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도 북한의 로켓 발사를 도발 행위이자 유엔 결의 위반이라고 비난하고 북한이 예정대로 로켓을 발사할 경우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방침임을 후 주석에게 통보했다.

아소 다로 일본 총리도 1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안보리에서 새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고 이 대통령은 이에 공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시위도 '세계적' = 정상회의를 전후해 각국에서 몰려든 시위대들은 세계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각국의 경제 실정을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회의 전날인 1일부터 영국 런던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영국 경찰은 시위 관련자 86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런던의 금융 중심지인 `시티' 지구에 모여든 시위대가 4천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으며 2일에도 20 회의장인 런던 동부 도클랜드의 `엑셀(Excel) 전시센터'와 가까운 곳에서 가두시위를 계속했다.

런던 중심부의 주요 기업들이 이날 하루 휴업한 가운데 영국 경찰은 약 4천700명의 병력을 회담장 주변과 런던증권거래소(LSE)등에 배치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런던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ofcour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