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2월이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고 싶어하는 골프 선수들이 퀄리파잉스쿨을 치른다.

PGA 투어는 6라운드, LPGA 투어는 5라운드를 돌며 선수들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합격증을 받기 위해 지옥의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PGA 투어는 상위 25위 이내, LPGA 투어는 상위 20위 이내에 들면 꿈에도 그리던 정규멤버가 된다.

하지만 정규 멤버가 됐다고 해서 모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PGA 투어의 경우 퀄리파잉스쿨에 합격한 선수 이외에도 메이저대회 챔피언 등 우승 경력이 있는 선수와 전년도 상금 랭킹 125위 이내 선수들에게 출전권을 주기 때문에 200여명의 선수가 항시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보통 1개 대회 출전 선수는 140여명이고 대회조직위원회는 부상 등 갑작스러운 일로 출전 신청을 해놓고도 나오지 못하는 선수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10명이내로 결원을 메워 줄 선수를 확보해 둔다.

이들이 바로 `대기 선수'(Alternatives)들이다.

대기 선수들은 대회조직위에서 자신의 대기 순번을 확인한 뒤 출전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일단 대회 장소로 간다.

그리고 기권하는 선수가 없는지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다.

1라운드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출전권을 얻지 못한다면? 그냥 짐을 싸야 한다.

PGA 투어 혼다클래식에서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한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은 이 대회에서 대기 선수로 기다리다 출전권을 얻어 우승까지 한 사례다.

작년 퀄리파잉스쿨에서 턱걸이로 통과한 양용은은 시즌 다섯번째 대회인 뷰익인비테이셔널에서야 처음 출전할 수 있었다.

양용은은 시즌 두번째 대회인 소니오픈 때는 하와이까지 날아왔지만 연습장에서 퍼트와 드라이버 연습만 하다가 "빈자리가 없네요"라며 한숨만 쉬고 돌아서야 했다.

LPGA 투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는 LPGA 투어 풀시드를 받은 최나연(22.SK텔레콤)은 작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렉서스컵에서 한해를 정리해 달라는 질문에 "조건부 출전 선수는 정말 할 게 못된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역시 퀄리파잉스쿨 성적이 좋지 못했던 최나연은 출전 보장도 없이 대회 장소로 가서 기다리느라 어떤 때는 2-3개월 동안 한번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처럼 큰 나라에서 멀고 먼 길을 달려 갔다가 대회 출전을 하지 못한다면 기가 찰 노릇이다.

한국에도 대기 선수는 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나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도 매년 연말 순위전을 치러 대기 순번을 준다.

여기서 하위권으로 밀리면 대회 출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나마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지 않은 한국이라는 것이 다행이다.

수도권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결원이 생기면 대회조직위는 대기 선수에게 휴대전화로 연락해 주기 때문에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처럼 설움을 받는 대기 선수지만 희망은 있다.

PGA 투어는 한 해에 네번, LPGA 투어는 두번, 대기 순번을 조정해 준다.

물론 출전 기회를 잡아 좋은 성적을 내야 대기 순번이 올라간다.

양용은처럼 대기 선수로 출전해 우승까지 하면 그 때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양용은도 두둑한 상금은 물론 특급대회인 CA챔피언십과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출전 자격을 한꺼번에 얻었다.

"억울하면 공을 잘 쳐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대기 선수는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에 가려진 냉정한 프로골프 세계의 그늘이기도 하다.

(서울연합뉴스) 최태용 기자 c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