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계약 3일 앞두고 '가격 재협상' 요구
산은 "한화 입장 알아 … 여러 방법 고민"

6조여원 규모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자금 조달이 힘들어진 한화그룹이 지난달 14일 산업은행과 맺은 양해각서(MOU) 주요 조항의 수정을 요구하며 배수진을 치고 나왔다. ㈜한화,한화석유화학,한화건설 등 대우조선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한 3개 한화 계열사는 26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인수대금 지급조건을 완화하고 본계약 체결을 실사를 마친 이후로 미룰 것 등을 산업은행에 공식 요청키로 결의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측은 "한화의 제안에 대해 법률적인 문제 등을 검토해 28일 오후께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며 장고에 들어갔다.

◆시간 벌기일까 '포기' 수순일까

자금사정 악화 등을 이유로 대금지급 연기를 요청했던 한화의 태도가 돌변했다. 이날 3개 계열사의 결의안은 '본계약 연기'가 핵심 내용이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사내외 이사들은 "실사도 진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화에 불평등한 내용의 MOU 조항대로 계약을 강행할 수는 없다"며 "조선경기 냉각과 대우조선 잠재부실 가능성 때문에 정밀실사후 본계약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화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본계약을 체결하면 산은측에 협상주도권을 빼앗기고,매각대금의 5% 추가납부로 선택의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화는 예정대로 본계약을 추진할 경우 산업은행측에 단서조항을 요구한다는 입장도 정리했다. 3%로 돼있는 가격조정폭을 대폭 늘리고,향후 노조의 실력행사로 실사가 저지될 경우 한화에 계약해지권리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이런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본계약에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결의안은 대금지급 연기 등 기존 요구보다 몇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는 게 업계 해석이다. 아예 "협상을 다시 하자"며 산은 압박의 강도를 한껏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본계약 연기 등으로 한화의 태도가 돌변하면서,시장에서는 한화가 대우조선을 중도 포기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재협상 카드로 국면 돌파 시도

한화그룹 M&A실무팀은 최근 들어 인수자금 마련 실패를 기정사실화하고 연일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외환은행 하나은행 농협 등은 MOU를 체결하기 전 각각 6500억원씩 자금을 대기로 확약했던 인수금융회사들이 자금사정 악화를 이유로 모두 발을 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등 대우조선 인수참여를 희망했던 국내외 전략적 투자자(FI)들도 상황이 돌변하면서 한화와의 접촉 자체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관계자는 "M&A협상 당시 6만원대였던 대우조선 주가가 1만5000원대로 떨어져 FI들은 투자하자마자 장부상으로나마 70% 이상 손해를 보는 구조"라며 "현재로선 FI를 끌어들이는 게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한화의 협상태도가 돌변한 배경이다. 한화가 믿는 구석도 있다. 산은이 향후 제기될 특혜시비 등 명분에 집착하고 있지만,산은의 민영화 1호사업인 대우조선 매각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을 것이란 게 한화측 계산이다.

◆산은,"대금 지급시기 연기 등 검토"

한화의 재협상 요구로 대우조선 인수협상의 '공'은 산은에 넘어갔다. 산은은 한화쪽 통보에 입장발표를 유보하며 장고에 들어갔다. 산은 관계자는 이날 한화의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한화의 상황이 MOU 체결 시점보다 악화됐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계약대로 이행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거듭 밝혔다.

지금까지 산은은 29일 실사 없이 본계약을 체결한 뒤 매각 가격을 확정키로 했으며,본계약 체결이 무산되면 이행보증금을 챙기고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취소한다는 강경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다른 원매자를 찾기 쉽지 않은데다 한화가 대우조선 노조의 반발로 실사를 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이날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제한 후 "한화의 입장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여러 방법을 고민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손성태/김현석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