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미켈란젤로가 시스틴성당 천장화 '최후의 심판'을 완성한 것은 66세때였다. 5년간 거꾸로 매달려 오늘날 세계인의 발길을 사로잡는 이 대작을 완성했다. 그로부터 6년 뒤 70대에는 성베드로대성당 공사 감독에도 나섰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을 내놓은 것도 66세였다. 미(美)에 대해 철학적으로 천착한 이 대작으로 그는 독일 근대철학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시대의 평균연령을 감안해보면 대단한 노익장이다.

최근 에반더 홀리필드는 46세에 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에 재도전해 주목을 끌었다. 프로야구선수 정년이 40세라는 판에 대단한 투혼이 아닐 수 없다. 차기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경제이론가로 부각된 폴 볼커 전 FRB 의장도 팔순이다. 오바마의 기자회견때 바로 뒤에 꼿꼿하게 서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네 보통사람의 현실은 어떤가.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남으면 도둑)는 이미 옛말이다. '삼팔선'(38세가 정년)이라는 말까지 낯설지 않은 지경이다. 정년제도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지켜지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이상과 현실은 수시로 괴리되는데 정년이야말로 대표적인 사례다.

법원 판례를 보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정년나이는 직업별로 다양하다. 가령 법조인과 목사는 70세가 정년이다. 소설가 의사 약사는 65세다.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수산시장 중개인도 65세 '커트라인'에 포함됐다. 보험모집인은 60세이고,룸살롱의 속칭 얼굴마담은 50세를 정년으로 인정받은 적 있다. 골프장 캐디와 여성 패션모델은 35세라는 대목에는 의아심도 생긴다. 사회적 관행을 인정한 것 같은데,혹시 편견이 작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영양과 의료기술이 좋아지면서 평균수명은 늘어났다. 반면 정년은 짧아지는 추세다. 보통의 직장인들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일지 모른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 서민ㆍ중산층의 가장 큰 불안거리다.

사회적으로 임금피크제 확대라든가 일자리나누기 정책이 다양하게 모색되는 배경이다. 이럴수록 개인입장에선 직장 대신 확실한 직업을 갖도록 자기연마에 힘쓸 수밖에 없다. 청년 백수들도 '취직=직장구하기'라고만 보지 말고 평생직업을 찾는 데 더 노력하는 것은 어떨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