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 소설가 >

2008년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야 하는데 으슬으슬 추워진다. 삭신이 가라앉으면서 아리고 욱신거린다. 재채기가 거듭 나오고 주체할 수가 없도록 콧물 눈물이 흐르면서 어지러워진다.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데다 독한 감기가 덮친 것이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콧물감기다. 다른 감기는 느긋하게 견딜 수 있는데 콧물감기는 어떻게 견딜 대책이 서질 않아 당황하여 마스크를 낀 채 잠을 자고 이튿날 이비인후과로 달려가 치료를 받고 항알레르기 약을 먹어야 한다. 내 알레르기 비염은 글로벌적으로 오염된 찬바람에 민감하다. 콧물감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밥 먹는 때 외에는 내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더불어 경제가 춥고 세상이 춥다. 신문이나 방송들이 몇 달째 내리 호들갑스럽게 경제 한파에 대한 너스레를 떨어대며 불안한 예측들을 한다. 시장에서는 크리스마스나 세밑의 특수가 바닥을 치고 있다고 한다. 미국발 경제위기의 기분 나쁜 증후들 때문에.그 증후들 앞에서 내 영혼은 거듭 재채기를 하면서 콧물을 흘려댄다.

일정한 직장을 가지지 않고 글만 쓰며 살아가는 모든 소설가는 잠정적인 직업인이면서 동시에 잠정적인 실업자이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얼마씩 저축하며 살아갈 수가 없다. 일정액의 정기적인 수입이 없고,그때그때 생기는 원고료 수입과 책이 팔린 데 따른 인세 수입과 강연료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장 안에 최소한 일이천만원(1년쯤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들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통장이 바닥이 나면 어느 출판사에서 선인세(빚돈)라도 받아다가 채워 놓아야 한다.

그 선인세 말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돈을 꾸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주변에는 가난한 형제,가난한 친구들만 있다. 내가 그들에게 돈을 꾸어줄 수는 있지만 내가 궁했을 때 손을 벌려서는 안 되는 사람들뿐이다. 내 경제생활에는 돈을 불리는 재테크라는 것이 없고,횡재도 생기지 않는다. 생긴 돈을 아껴 두었다가 생활하는데 사용할 뿐이므로 내 원고료나 인세들은 거래 은행의 통장에 들어와 머물러 있다가 조금씩 소모되는 것이고,오래지 않아 가뭄 든 저수지처럼 밑바닥을 드러낼 뿐이다.

때문에 나는 경제 한파가 온다는 소문이 나면 제일 먼저 으슬으슬 추워지게 되고 재채기를 하게 된다. 재채기는 소비를 줄이라는 신호이다. 그 신호는 콧물을 동반하므로 절약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가 나무의 줄기와 잎이라면 문화는 꽃이다. 나무가 가뭄을 만나면 제일 먼저 꽃이 시들게 마련이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문화 활동비부터 줄인다. 때문에 경제 한파가 닥치면 맨 먼저 출판사들이 곤궁해지고,그 결과는 작가인 나에게도 돌아온다. 앞으로 1~2년 동안은 몸과 마음에 내내 절약 마스크를 낀 채 견뎌야 할 모양이다.

미국 정부가 큰 회사 셋을 살리려고 20조원을 들이 붓지만 그것들이 반드시 회생하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다는 기사가 떴다. 그 다음의 문제는 차기 오바마 정부에 맡긴다는 것이다.

정부가 강남 아파트 규제 푸는 문제를 전면 재고한다는 기사도 떴다. 이렇게 풀고 저렇게 풀어도 아파트 경기가 풀리지 않자 당국은 당황하고 있다. 아,미국 부자와 강남 부자들이 쪼그라든다는 무서운 소식들.

'내가 경제는 좀 안다'던 대통령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 한파 속에서는 용빼는 재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몸의 감기,마음의 감기로 인해 2008년 세밑이 으슬으슬 춥다. 아,마스크 끼고 자는 겨울밤은 길다. 감기와 기나긴 겨울밤에는 땀과 잠이 약이다. 땀 흘리면서 곤히 잠들어버리자.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