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툭툭 불거진 보리이삭사이에 한 여인이 앉았다, 삶의 굴레를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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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툭툭 불거진 보리이삭사이에 한 여인이 앉았다, 삶의 굴레를 벗고…
벌거벗은 이브
운명의 굴레를 벗었다
인습에 저항하는 여성, 그것은 투사다
드넓은 자연 속에
관능적으로 자리잡은 그녀는
꽃과 보리처럼 자연에서 태어났다
보리밭은 언제봐도 싱그러운 생명력과 낭만이 넘친다. 툭툭 불거진 보리이삭은 아름다운 여인네가 임신한 모습 같다. 만삭이 된 아내를 보는 남편의 느낌이랄까. 넘실대는 보리밭의 벌거벗은 여인에게서는 포근한 생명과 경이로움이 숨쉰다. 청색,황색,보라색 보리수염 또한 빛깔이 얼마나 고운지 눈에 보이는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비전으로 보인다. 강렬한 색상들도 세상 속의 고요함을 일깨워 무한의 세계로 날아오르게 하는 느낌이다.
한국화가 이숙자씨는 '보리밭 화가'로 불린다. 보리밭과 관능적인 여체를 결합시킨 특이한 구성의 고품격 에로티시즘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1989년,'이브의 보리밭' 시리즈를 발표해 한국 화단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한국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브의 보리밭'은 알몸의 여성도 화제였지만 체모가 그대로 드러나 더욱 주목받았다. 보리밭과 여체를 소재로 설정하는 것은 에로티시즘을 토속적인 정서와 연관시켜 원시적인 삶의 풍정을 되살려내기 위한 수단이다. 그에게 '이브'는 내면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모든 여성의 내면적 갈등의 모습이기도 하다.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인습에 저항하는 여성상,그것이 화면 속의 이브로 나타난 것이다. 아름다운 곡선의 벌거벗은 이브는 그런 면에서 당시 여성해방의 기수이자 투사로 읽혀졌다.
그는 테크닉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고,더 나아가 자신의 잠재력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량을 충분히 습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잘 깨닫고 있다. 보리밭 그림은 돌,보석가루를 아교에 섞어 화폭에 바르는 암채기법(광물질을 원료로 한 물감)과 한국 전통의 채색화 기법을 통해 나온다. 암채를 사용해 보리알을 반입체적으로 표현한 부조적 화면은 전통 한국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함을 안겨준다.
작품에 나타난 드넓은 보리밭의 아름다움 역시 단순한 미학의 차원을 넘어선다. 보리밭으로 설정된 자연 속에 관능적으로 자리잡은 여성의 누드를 통해 자연에 대한 가식없는 시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또 여성을 표현하는 것도 마치 그 여인이 자연의 한 부분이기나 한 것처럼 혹은 그 여체가 보리 이삭이나 꽃들과 마찬가지로 대지에서 태어났다고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작품 속에 표현된 여인은 살아있는 생명의 생생한 이미지를 되살려낸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사실 자연에 대한 작가의 접근은 단지 상상의 시각이 아니라 원초적인 관점에서 시작된다. 보리밭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한(恨)의 정서,강인한 생명력 등 다양한 미적 요소들이 모두 담겨있다. 숭고한 차원에 의존해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일종의 예언적인 '울림의 미학'이 녹아 있는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 초기의 작업들은 자연에 깃든 '울림'이나 '정신적 흔적'을 지니고 있다. 화면에서 목가적인 자연과 여성 누드화 사이의 상호작용은 태초의 인간 마음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일종의 선각자의 진리를 전달하는 여사제(女司祭)로 승화된다. 때문에 작가에게 있어서 회화는 결국 사랑의 모태에 대한 창조적인 에너지를 방출할 효과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마력적인 이 예술가의 그림들은 캔버스에 기록된 삶에 대한 담화와 균등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그림들을 통해서 삶의 울림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이씨의 작업을 리얼리즘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업에 내재된 심층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재로 그의 보리밭이 예술가의 섬세한 분석에 의해서 사진처럼 정교한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의 영역에 근접해 있다고 할지라도,표면적이고 너무 단순한 시각을 넘어선 그 이상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이씨의 회화 작업들은 우리에게 신성한 예술의 회화로서 이해되어지는 '아이콘'이다.
/빠트리스 드 라 뻬리에르 (프랑스 미술평론가 겸 미술전문지 '유니베르 데자르'발행인)
운명의 굴레를 벗었다
인습에 저항하는 여성, 그것은 투사다
드넓은 자연 속에
관능적으로 자리잡은 그녀는
꽃과 보리처럼 자연에서 태어났다
보리밭은 언제봐도 싱그러운 생명력과 낭만이 넘친다. 툭툭 불거진 보리이삭은 아름다운 여인네가 임신한 모습 같다. 만삭이 된 아내를 보는 남편의 느낌이랄까. 넘실대는 보리밭의 벌거벗은 여인에게서는 포근한 생명과 경이로움이 숨쉰다. 청색,황색,보라색 보리수염 또한 빛깔이 얼마나 고운지 눈에 보이는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비전으로 보인다. 강렬한 색상들도 세상 속의 고요함을 일깨워 무한의 세계로 날아오르게 하는 느낌이다.
한국화가 이숙자씨는 '보리밭 화가'로 불린다. 보리밭과 관능적인 여체를 결합시킨 특이한 구성의 고품격 에로티시즘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1989년,'이브의 보리밭' 시리즈를 발표해 한국 화단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한국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브의 보리밭'은 알몸의 여성도 화제였지만 체모가 그대로 드러나 더욱 주목받았다. 보리밭과 여체를 소재로 설정하는 것은 에로티시즘을 토속적인 정서와 연관시켜 원시적인 삶의 풍정을 되살려내기 위한 수단이다. 그에게 '이브'는 내면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모든 여성의 내면적 갈등의 모습이기도 하다.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인습에 저항하는 여성상,그것이 화면 속의 이브로 나타난 것이다. 아름다운 곡선의 벌거벗은 이브는 그런 면에서 당시 여성해방의 기수이자 투사로 읽혀졌다.
그는 테크닉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고,더 나아가 자신의 잠재력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량을 충분히 습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잘 깨닫고 있다. 보리밭 그림은 돌,보석가루를 아교에 섞어 화폭에 바르는 암채기법(광물질을 원료로 한 물감)과 한국 전통의 채색화 기법을 통해 나온다. 암채를 사용해 보리알을 반입체적으로 표현한 부조적 화면은 전통 한국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함을 안겨준다.
작품에 나타난 드넓은 보리밭의 아름다움 역시 단순한 미학의 차원을 넘어선다. 보리밭으로 설정된 자연 속에 관능적으로 자리잡은 여성의 누드를 통해 자연에 대한 가식없는 시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또 여성을 표현하는 것도 마치 그 여인이 자연의 한 부분이기나 한 것처럼 혹은 그 여체가 보리 이삭이나 꽃들과 마찬가지로 대지에서 태어났다고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작품 속에 표현된 여인은 살아있는 생명의 생생한 이미지를 되살려낸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사실 자연에 대한 작가의 접근은 단지 상상의 시각이 아니라 원초적인 관점에서 시작된다. 보리밭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한(恨)의 정서,강인한 생명력 등 다양한 미적 요소들이 모두 담겨있다. 숭고한 차원에 의존해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일종의 예언적인 '울림의 미학'이 녹아 있는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 초기의 작업들은 자연에 깃든 '울림'이나 '정신적 흔적'을 지니고 있다. 화면에서 목가적인 자연과 여성 누드화 사이의 상호작용은 태초의 인간 마음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일종의 선각자의 진리를 전달하는 여사제(女司祭)로 승화된다. 때문에 작가에게 있어서 회화는 결국 사랑의 모태에 대한 창조적인 에너지를 방출할 효과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마력적인 이 예술가의 그림들은 캔버스에 기록된 삶에 대한 담화와 균등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그림들을 통해서 삶의 울림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이씨의 작업을 리얼리즘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업에 내재된 심층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재로 그의 보리밭이 예술가의 섬세한 분석에 의해서 사진처럼 정교한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의 영역에 근접해 있다고 할지라도,표면적이고 너무 단순한 시각을 넘어선 그 이상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이씨의 회화 작업들은 우리에게 신성한 예술의 회화로서 이해되어지는 '아이콘'이다.
/빠트리스 드 라 뻬리에르 (프랑스 미술평론가 겸 미술전문지 '유니베르 데자르'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