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탱크' 박지성(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세계 클럽팀들의 왕중왕을 가리는 2008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서 소속팀 맨유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팀 사상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데 앞장섰다.

21일 일본 요코하마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클럽월드컵 결승 맨유와 리가 데 키토(에콰도르)와 경기.
제프 블래터 FIFA 회장과 대한축구협회 회장인 정몽준 FIFA 부회장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날 경기는 세계 축구의 양대산맥인 유럽과 남아메리카 챔피언이 우승컵을 다퉈 관심이 쏠렸다.

맨유는 지난 2007-2008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고 키토는 남미 클럽 최강전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챔피언으로 양팀은 대륙의 자존심까지 걸고 싸웠다.

박지성은 당당하게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인 감바 오사카(일본)와 준결승 때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루이스 나니, 라이언 긱스에 밀려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지만 맨유의 사상 첫 클럽월드컵 우승 주역은 박지성이었다.

박지성은 웨인 루니-카를로스 테베스 투톱을 받치는 좌우 측면 미드필더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기용됐다.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공간을 창출하고 기회를 만드는 박지성을 높게 평가하는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의 당연한 선택이었다.

지난 5월 UEFA 챔피언스리그 때는 준결승까지 네 경기 연속 풀타임으로 활약하고도 정작 첼시와 결승 명단에서 빠졌던 박지성으로서는 가슴에 맺혔던 한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기분 좋은 선발 출격이었다.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초반부터 활발한 움직임으로 초반 주도권 장악에 앞장섰다.

경기 시작 2분 만에 상대 진영 페널티지역에서 수비수들과 볼을 다퉜던 박지성은 전반 14분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다 아크 부근에서 몸싸움 끝에 넘어지면서 공간을 열어줬다.

루니는 열긴 틈으로 강한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공은 골키퍼 세바요스의 선방에 막혔지만 박지성의 숨은 곳에서 활약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전반 26분에는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뒤 수비수를 따돌리고 크로스를 올렸다.

몸의 중심을 잃는 바람에 공이 옆 그물을 스쳐갔지만 저돌적인 돌파는 일품이었다.

박지성이 두 차례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맞았지만 마무리 부족은 옥에 티였다.

전반 34분 아크정면을 돌파한 테베스가 힐패스를 해주자 루니가 다시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감각적인 패스를 했고 박지성은 오른쪽 페널티지역에서 대포알 같은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골키퍼 정면이 아니었다면 득점으로 연결될 수 있는 날카로운 슛이었다.

박지성은 후반 44분에도 안데르손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길게 찔러준 전진패스를 받아 왼쪽 페널티지역에서 달려들며 오른발을 살짝 갖다댔다.

그러나 달려 들어가던 속도 때문에 몸이 왼쪽으로 치우치는 바람에 공은 골대 위로 떴다.

선제골을 기회를 놓친 게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맨유는 후반 4분 수비수 네마냐 비디치가 비신사적인 행위로 퇴장당해 10-11로 싸우는 수적 열세의 악조건을 딛고 루니가 후반 29분 결승골을 넣으면서 극적인 1-0 승리를 낚았다.

박지성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뛰지 못해 우승 메달을 받지 못했어도 사상 첫 FIFA 타이틀이 걸린 클럽월드컵 결승에서 당당히 전.후반 90분을 풀타임을 뛰어 승리 확정 후 화려한 우승 세리머니의 주인공이 됐다.

자신의 11번째 우승 타이틀이다.

지난 2000년 일본 교토 퍼플상가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박지성은 이듬해 J2리그에서 첫 우승컵을 차지했다.

이어 2003년 1월 일왕배 제패에 이어 스승인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옮긴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서도 그해 에레디비지에 우승에 이어 2003-2004시즌 직전 슈퍼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박지성은 우승 퍼레이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4-2005시즌 네덜란드 정규리그.FA컵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했고 2005년 여름 맨유에 새 둥지를 틀어 2005-2006시즌 칼링컵 제패에 이어 2006-2007시즌과 2007-2008시즌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기쁨을 누렸다.

이어 UEFA 챔피언스리그 제패를 지켜봤던 박지성은 마침내 클럽월드컵 정상에 오르며 개인통산 11번째 우승 타이틀을 챙겼다.

한국인 최초의 클럽월드컵 우승. 박지성이 세계 최고 구단 맨유의 땜질 선수가 아닌 당당한 주전으로 얻어낸 타이틀이기에 더욱 값진 성과물이다.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