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창업 꼬리 감추고 해고 공포만
허셰사회 구현의 통치이념 위기 직면

광저우 시내에서 주장을 넘어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메이디(美的)라는 대형 입간판이 나타난다. 하이얼과 함께 중국 전자산업을 대표하는 가전업체 메이디의 공장이다. 지난 24일 오후 6시.평소 같으면 수만명의 종업원이 퇴근하면서 자전거의 긴 행렬을 이룰 시간이지만 웬일인지 한산했다. 자전거 행렬은커녕 여행용 가방을 든 젊은 직원 둘만이 정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중 한 청년이 "직원의 50%가 설 때까지 휴직 처리돼 출근하지 않았고 그나마 생산을 단축한 상태여서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설명해줬다.

중국 경제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둥성의 경제가 경제위기의 쓰나미에 휩싸이면서 '판샹차오(返鄕潮ㆍ고향으로 회귀)'라는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강제로 일시휴직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시의 농민공(농촌출신 도시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향하는 '민궁차오(民工潮)'의 역류현상이다.



광저우시내에 위치한 광저우역은 손에 보따리를 든 농민공들로 초만원이었다. 감산경영은 대기업도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메이디가 몇 달 전만 해도 철판을 매월 천t 단위로 주문했는데 최근에는 150t이나 200t씩 사들인다"고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전했다. 만들어도 팔리지 않자 주문이 들어온 만큼만 생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철강이나 석유화학제품의 대리상들은 대부분 파산위기에 몰리고 있다. 9월 이전엔 원자재 파동으로 계속 뛰는 가격 때문에 대량으로 물량을 확보했었는데 한두 달 새 판매가격이 50% 이상 폭락하면서 손쓸 겨를도 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제조 유통 할 것 없이 시장이 붕괴되면서 하루에 수만명씩 고향행 열차를 타고 있다"고 박종식 KOTRA 광저우 무역관장은 전했다.

공단 주변을 떠도는 농민공들도 부지기수다. 회사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면 사회보장연금 등의 혜택이 없어진다. 거주지역에서 혜택을 받도록 한 호구제도 때문이다. 둥관시 후제 상가에서 만난 왕칭씨(29)는 "회사를 다녀야 주택매입 지원금 등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고향으로 가면 다 헛일이 되고 만다"며 한숨을 쉬었다.

중국 정부는 해고 노동자에 대한 재취업 교육을 강화하는 등 응급 지원책을 펴고 있긴 하다. 그러나 파산 도미노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박종식 관장은 "광둥성이 큰돈을 벌 수 있는 '샤하이(下海ㆍ창업)'가 아니라 '샤강(下崗ㆍ해고)' 사회로 전환됐다"며 "이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허셰(和諧)' 사회 구현이라는 중국 정부의 통치이념 자체가 위기로 몰릴 것"이라고 밝혔다.

광둥성 광저우/둥관=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