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업체에 위탁 경영ㆍ조선소 매입 읍소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 조선사들이 대형 조선업체에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짓다 만 배를 인수해 달라거나 아예 조선소를 통째로 맡아 운영해 달라는 위탁경영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형 조선사들은 뾰족한 수가 없다며 난감한 표정이다. 3년치 이상의 일감이 밀려 있어 갑자기 다른 선박을 끼워 넣을 여유가 없는데다,주력 선박의 사이즈도 달라 건조공정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절박한 중소 조선사

중소 조선사에 대한 국내 금융회사의 선수금 환급보증(RG)은 현재 거의 끊긴 상태다. '카드 돌려막기'식으로 선수금을 받아 배와 도크를 지어 오던 중소 조선사들 중 상당수는 조업 중단 위기에 몰렸다. 간신히 배를 완공하더라도 납기일을 맞추기 어려운 형편이다. 상당 규모의 연체료를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막다른 골목에 몰린 중소 조선사들이 최근 대형 조선업체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몇 군데의 중소 조선업체로부터 선박 건조 계약을 인수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또 다른 조선업체 관계자도 "경영난에 처한 중소 조선업체들이 고육지책으로 건조 중인 선박을 대형 업체에 넘기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당초 계약금액보다 싼 가격에 넘기더라도 지금 리스크를 털어내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선소 전체의 운영을 의뢰하는 곳도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올 들어 몇몇 중소 조선업체가 위탁경영을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며 "일부 소규모 조선사는 이미 한계상황에 도달한 듯하다"고 전했다.

조선소 부지를 사달라고 찾아오는 중소 조선업체도 나타나고 있다. C&중공업은 작년 말 인수한 신우조선해양의 경남 거제 조선소 부지(총면적 17만㎡)를 매각하기 위해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찾았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와주고는 싶지만…

대형 조선사들이 중소 조선업체의 청을 들어 주기엔 걸림돌이 너무 많다. 우선 작업 일정에 빈틈을 찾기 어렵다. 대형 조선업체는 이미 4년치에 가까운 일감을 확보한 상태라서 중소 조선소의 일감을 대신 해주려면 다른 배의 건조 스케줄을 미뤄야만 한다.

중소 조선업체들이 따낸 선박 건조주문이 대부분 저가 수주라는 것도 문제다. 기껏 지어봐야 남는 게 없다는 얘기다. 선주(船主)의 신용도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배를 완공하더라도 잔금을 받지 못할 우려가 크다.

도크의 생산성도 떨어진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소 조선업체가 받아놓은 선박은 대형 조선업체가 만들기엔 너무 사이즈가 작다"며 "대형 선박을 위해 지어진 도크에 소형 선박을 집어 넣으면 도크 회전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위탁경영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 조선소는 자체 일감을 해소하기에도 가동인력이 넉넉지 않은 상태"라며 "위탁경영을 하려면 일부 인력과 설비를 따로 떼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