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한국 자동차업계에 불리하지만은 않다"
한.미FTA 비준동의 일정에도 실제 영향 미미할듯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7일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미국 제조업의 근간인 자동차업계 살리기에 향후 정국운영의 최우선 역점을 두겠다고 밝힌 이후 이러한 조치가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한국자동차 산업에 미칠 효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오바마 당선인이 대선 유세과정에서 "한국은 수십만 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반면, 미국이 한국에 파는 자동차는 고작 5천대도 안된다"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다 한국 자동차 시장의 추가개방이 없는 한 한.미FTA에 반대한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의 이번 발언이 나온 배경과 향후 파장에 대한 득실을 정확하게 따져 대처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 자동차 업계만 특별히 타격을 받거나 한.미FTA 비준동의 일정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지적이 워싱턴의 통상전문가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이들은 먼저 오바마의 이번 발언이 나온 배경부터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의 `빅3' 자동차회사인 GM과 포드, 크라이슬러는 현재 경기침체와 고유가로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손실이 급증하고 있다.

만약 빅3에 대한 긴급자금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부도사태로 최악의 경우 미 전역에서 300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오바마 당선인의 이번 발언이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빅3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 자체가 한국 자동차의 대미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미리 단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빅3 자동차 회사들은 최근들어 월평균 30%에 가까운 매출감소를 겪고 있다.

이것은 미국 경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미국 내 자동차 수요감소는 한국 자동차의 판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가 이들 업체를 긴급 지원하지 않아 도산하도록 내버려둘 경우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돼 미국 실물경제의 붕괴와 미 제조업 기반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에 진출한 한국 자동차 기업은 물론 일본 기업들까지 동반 판매부진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 당선인이 위기에 처한 미국 자동차 업계 살리기에 나서겠다는 정국구상이 반드시 국내 자동차 업계에 반드시 부정적일 수만은 없다는 게 통상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오바마 당선인이 취임 후 국내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단기적으로 보호주의 색채를 띤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미국 내 자동차 시장 판매점유율에서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에 비해 크게 뒤지는 한국차를 우선적으로 견제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상식적으로 봐도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바마 당선인의 그동안 자동차 관련 발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차세대 자동차 개발을 통해 미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최고로 높이겠다는 것이지 미국 시장에서 경쟁이나 무역을 차단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통상전문가들은 말했다.

오바마 당선인의 핵심 구상은 연비가 우수한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 한국과 일본보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자동차 종주국의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미FTA 비준안도 미국 대통령과 의회의 레임덕 시기에 통과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오바마 당선인의 자동차 관련 발언이 미 의회의 한.미FTA 비준 동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통상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다.

다만, 오바마 당선인이 의회에서 제2차 경기부양안 통과를 서둘러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부시 행정부와 빅딜을 추진한다면 콜롬비아, 파나마, 한국 FTA가 주요 협상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는 관측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램 이매뉴얼 차기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가 10일 ABC방송에서 부시 행정부로부터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경기부양안에 대한 동의를 얻으려고 콜롬비아와의 FTA 통과를 연계시키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혀 이 가능성마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당선인이 경기부양안을 서둘러 처리한다고 해도 당장 경제적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FTA보다는 차라리 공화당이 요구하는 감세안 등을 경기부양안 통과를 위한 빅딜에 포함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고 통상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재홍 특파원 jaeh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