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대화' 오바마 선호할 듯..대선후에도 당분간 탐색 전망

북한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 논평은 커녕 사실보도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침묵하고 있지만, 핵문제를 포함해 자신들의 장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요인중 하나인 선거 결과에 촉각을 세우고 있을 것은 자명하다.

미국의 대선이 본격화된 올해 1월 이후 대선 결과를 염두에 둔 북한 매체들의 논평은, 1월18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아이오와주 예비선거 결과를 전하며 미국의 대선 제도를 상세히 소개한 뒤 맨끝에 덧붙인 "여론들은 미국에서 누가 더 많은 돈을 뿌려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외교정책에서의 미국의 오만성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게 전부다.

지난 9월25일 북한의 대외방송인 평양방송이 '딸라에 의해 좌우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대선에 관해 보도했으나 판세 등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이 돈잔치를 벌이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한갖 기만"이라는 주장을 폈을 뿐이며, 노동신문도 4,5,6월 한차례씩 이런 류의 보도만 했다.

그러나 미국의 두 대선 후보에 대한 북한의 호불호가 살짝 드러난 적은 있다.

노동신문은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가 확정된 후인 6월16일 '월계관을 쟁탈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돈뿌리기 경쟁'을 주로 다루면서도 "(공화당 후보인) 매케인은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적대 국가 지도자들과도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회담하겠다고 말한 것을 천진난만한 것으로 야유했다"고 소개하는 방식으로 오바마의 대화론에 관심을 나타냈다.

그보다 수일 앞선 같은 달 9일엔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조선반도 관계에서 본다면 부시 정권의 잘못을 엄하게 비판하고 조선(북)의 지도자와 조건없이 만나겠다고 공언해온 오바마가 '부시의 아류'이자 네오콘의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매케인보다 낫기는 낫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지난 9월말 평양을 방문했던 미국 관광회사 아시아 퍼시픽의 월터 키이츠 대표를 만난 북한 사람들은 두 후보의 정책 차이나 차기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매체들이 미국 대선에 침묵 기조인 것은 "북한이 양자간 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선거라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상황을 놓고 외교적 고려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분석했다.

남한의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서도 북한은 작년 한나라당의 경선 전까지는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다가 전당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엔 당선과 취임 한달여 후인 3월말까지 이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자제했었다.

4월1일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계기로 이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비난이 시작된 것은 선거와 대통령직 인수위 과정 및 취임 한달을 지켜보고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린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이번에도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즉각 직접적인 반응을 내놓기보다는 당분간 탐색과 관망 자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김연철 소장은 "북한은 남한의 정권교체 과정에서 포용정책이 이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판단 오류를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노력의 하나로, 미국의 대선 직후 전미외교청책협의회(NCAFP)가 주최하는 북한문제에 관한 민.관 토론회에 북한의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이 참석하는 길에 당선자측의 대북정책 풍향을 탐색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솔깃할 민주당 오바마 후보의 '적대 국가 지도자와 조건없는 대화'론은 대북 정책 수단에서 압박에 중점을 두는 공화당 매케인 후보와 가장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오바마 후보 진영의 프랭크 자누지 한반도정책팀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오바마 후보는) 6자회담을 보완할, 원칙에 의거한 직접 외교가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해 민주당의 전통적인 북미 양자대화식 해법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자누지 팀장은 또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매케인 후보진영의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김정일 위원장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반대하자 "정상회담은 국가이익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면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최근 자누지 팀장을 만났던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그가 3단계 핵폐기가 진행되면서 북한과 미국의 외교대표부가 각각 워싱턴과 평양에 상호 설치돼 외교관이 상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종전선언, 평화협정 등 북미관계 정상화에 주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오바마 진영의 이같은 구상은 북한에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집권 시절 북한과 풍부한 협상 경험을 가진 민주당은 핵문제뿐 아니라 미사일, 재래식 무기, 인권 문제 등에 대한 포괄적 해결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돼, 세밀하게 단계를 쪼개는 '살라미 전술'에 익숙한 북한이 무조건 환영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게다가 건강이상설 속에 세달 가까이 공개활동을 하지 않는 김정일 위원장이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라면, 그가 직접 나서야 하는 북미 정상회담이나 미 국무장관의 방북 등 미국의 대화 '공세'는 오히려 북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면 미국의 대북정책이 크게 변화할 수 있다"며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경험에 따라 포괄적인 문제해결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철 소장은 "외부세계, 특히 미국의 정세변화에 민감한 북한도 오바마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과 관계가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과 기대감 속에서 당분간 침묵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