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金泳世) < 연세대 교수·경제학 >

로마제국이 기울어가던 서기 361년 황제자리에 올라 제국의 부흥을 시도한 율리아누스는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자마자 황궁 개혁에 착수한다.

개혁의 발단은 의외로 조그마한 사건이었다.

율리아누스는 이발을 하고자 황궁 이발사를 불렀다.

그러자 지체 높은 고관으로 여겨질 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은 20여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황제는 오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이발사라고 말하자 그 가운데 특별히 더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앞으로 나와 자기가 이발사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나머지 저 사람들은 누구냐고 황제가 묻자 이발사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자신을 돕는 조수들이라고.

관료조직은 내버려두기만 해도 커지는 속성을 갖고 있다.

민간 경제주체는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발전을 추구하는 반면 관료는 주변에 동류를 겹겹이 늘리는 방법으로 자기보존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부문은 조직,인원,예산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려는 속성이 있다.

또 일단 팽창된 공공부문이 스스로 작고 효율화해지려는 자기 혁신을 시도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공공부문의 개혁은 이해당사자들을 강제하고 복종시키는 힘을 가진 통치권력만이 할 수 있다.

공기업으로 논의를 좁혀보자.작년 말 현재 295개 공공기관의 직원 수는 27만6000여명에 이르며 올해 인건비로 13조3000억원이 지출됐다.

참여정부 5년 만에 직원 수는 43%,인건비 규모는 80%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참여정부 들어 새로 만들어진 공기업만도 43개인데 그도 모자라 현재 신설 추진 중인 공공기관도 11개에 이른다.

공기업들은 지난 5년 동안 180조여원에 이르는 정부 지원을 받고도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작년 말 현재 410조원에 달했다.

이는 올해 정부 예산의 2.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대규모 적자 기관에서 배우자의 외조모까지 사망위로금 지급,창립기념일과 법정휴일이 겹치면 평일에 놀기,해외여행이나 다름없는 해외연수,최하위 성과등급 상여금 330%,내부직원이 입찰 참여 투기차익 챙기기.조선말 탐관오리의 횡포가 아니다.

오늘날 공기업의 경영 방만과 도덕적 해이 백태(百態)는 국회 국정감사나 기획예산처 조사 때마다 지면에 가득하다.

오죽하면 요즘 공기업 가운데 '신이 내린 직장'을 넘어서 '신도 가고 싶어하는 직장' 심지어 '신도 모르는 직장'도 있다고 한다.

개별 공기업을 원점에서 검토해 민영화,경쟁도입,기능 재조정,지배구조 개선 등 맞춤형 로드맵에 따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우선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자체 수입 80% 이상의 시장형 공기업의 경우 과감히 민영화할 필요가 있다.

전력,철도,가스,공항공사 등인데 대개 국민의정부가 추진하다 참여정부가 멈춰 세운 것들이다.

민간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었거나 공기업 설립 취지와 무관한 기능은 재조정해야 한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통합,산업은행을 포함한 국책은행의 민영화,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국유화된 시중금융사들의 매각 등이 여기 해당한다.

공기업을 깡그리 민영화할 수는 없다.

공공성이 워낙 강하거나 원매자 부재로 인해 민영화가 어려운 부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도 비록 소유구조는 공기업이지만 지배구조나 경쟁체제에 있어서는 민간이나 다름없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경영책임 강화,직원 성과평가와 상벌체계의 강화,사외이사와 감사의 감시 시스템 강화,임원공모제 등이 세부방안이다.

사회보험관리공단을 포함해 많은 기관들은 쌍방향 정보 활용 및 조직 효율화로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개혁은 쉽지 않다.

개혁으로 손해를 보는 기득권층은 격렬히 반대하는 반면 개혁으로 이득을 보는 불특정다수는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이 호락호락 물러날 리 없다.

통치권자의 강력한 정치적 의지만이 공공부문 개혁의 열쇠이다.

또 신중하지만 신속한 움직임이야말로 개혁의 핵심 성공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