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극적합의 가능성에 실낱 희망

난항을 거듭해 온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8일 문 후보의 독자행보 선언으로 사실상 무산됐다.

19일 치러지는 대선 직전에 극적인 반전이 이뤄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당초 양 후보측이 구상했던 후보 단일화 추진의 그림은 이미 어그러진 상태여서 그야말로 실낱같은 희망 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후보 단일화의 무산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중앙선관위의 `단일화 토론 TV 생중계 불허' 방침과 재야 시민사회 원로들의 중재 중단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동상이몽'일 수밖에 없는 두 후보의 근원적 입장 차와 상호 불신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많다.

신당 정 후보는 문 후보의 지지층을 흡수해 `이명박-이회창-정동영'의 3강 구도를 `이명박-정동영'의 2강 구도로 전환시키고 민주당 이인제 후보쪽에도 단일화 압박을 가해 `개혁진영 단일후보'로 나서겠다는 생각이었다.

반면 문 후보는 토론회를 통해 참여정부의 실정 책임을 함께 지고 있는 정 후보를 사퇴시키고 본인이 이명박 후보와 맞설 개혁진영 후보로 나서야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 때문에 정 후보쪽에서는 `후보 단일화'라는 표현을 쓴 반면 문 후보쪽에서는 `진검승부'라는 표현을 썼다.

전자가 `개혁진영 후보들의 연대'에 방점을 둔다면 후자는 `경쟁력 없는 후보의 사퇴를 통한 표분산 방지'라는 논리를 구성했다.

정 후보측은 여론조사 지지율 두자릿 수도 안되는 문 후보가 정 후보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무례'한 일일 뿐 아니라 정치권의 상식을 벗어나는 주장이라며 신뢰를 주지 않았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문 후보처럼 후보단일화 상대와의 정책과 노선의 차이를 강조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기보다는 통합의 정신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정 후보측 논리였다.

이에 비해 문 후보측에서는 정 후보측에 대해 "자기보다 작으면 무조건 잡아먹으려 드는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문 후보측 관계자는 "후보 단일화를 잘못 했다가는 신당에 합류했다 무너진 손학규처럼 된다"고 경계했다.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는 신당이 특단의 대책 없이 단일화를 통한 정치공학적 해법만 모색한다면 함께 망하는 길이 된다는 게 문 후보의 주장이었다.

그 때문에 문 후보는 단일화를 `죽음의 키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전통적 의미의 후보 단일화가 정 후보쪽의 구상과 가깝다는 점에서 문 후보는 그동안 정치권과 재야 시민사회의 압박을 받아왔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단일화 협상의 무산 책임을 문 후보쪽에 두는 분위기가 강하다.

재야 시민사회 원로 대표 자격으로 양측 협상 중재에 나서려 했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문 후보가 중재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고 이는 결국 중재 포기의 원인이 됐다.

문 후보쪽에서는 시민사회 원로들이 충분한 토론회 기회를 보장하지 않고 `무조건 단일화'를 요구한다며 불신했고 원로들은 "우리를 믿을 수 없다면 관두자"며 중재를 중단했다.

문 후보측 내부에서는 `독자노선파'와 `후보 단일화파'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내부 투쟁 양상도 감지되고 있다.

대선 뿐 아니라 이후 총선까지 세력을 유지하겠다는 문 후보측 입장에서는 정 후보에게 개혁진영 후보자리를 양보했다가 대선에서 패배하면 존립 기반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BBK 주가조작 의혹 사건 수사 결과 발표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관련 의혹을 `말끔히' 털어버리게 된 것도 단일화 추진 동력을 떨어뜨렸다.

"둘이 합쳐도 이명박 후보를 이기기 어렵다"는 무기력감이 퍼진 것이다.

그러나 오는 19일 선거 직전 문 후보가 막판 결단을 통해 단일화의 가능성을 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 후보측 한 관계자는 "16~18일까지 지지율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도 도저히 안되면 과감히 결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