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가 18일 총선 이후 100일을 맞았으나 언어권 정당 사이 갈등으로 새 연립정부를 출범시키기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정국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 중재자로 임명된 헤르만 판 롬푸이 하원의장이 전날 알베르 2세 국왕에 중간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아직까지 물밑협상에서 극적인 돌파구는 열리지 않고 있다고 현지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통합의 상징인 알베르 2세 국왕이 중재에 나섰음에도, 연정협상이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과거 극우정치인들의 발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분리'란 단어가 일반 시민들의 대화 속에서도 등장할 정도로 분열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새 연립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물러나는 기 베르호프스타트 총리가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어 국정의 공백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도정부는 예정된 현안의 집행을 제외하곤 새로운 정책을 실시할 권한은 없어 새 정부의 출범이 늦어질수록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인구 1천60만명의 벨기에는 크게 네덜란드어권인 북부 플레미시와 불어권인 남부 왈롱, 그리고 두 언어를 공영어로 사용하고 있는 수도 브뤼셀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연정협상은 지난 6월10일 실시된 총선에서 기독민주당과 자유당이 전체 150석 가운데 과반인 81석을 얻으면서 두 정당사이에 시작됐다.

하지만 조각책임자였던 플레미시 지역의 이브 레테름 기독민주당 당수가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연정협상은 결렬됐다.

벨기에는 지방정부들이 이미 교통, 주택, 농업, 교육, 문화 정책에 전권을 행사할 정도로 자치권이 확대돼 있다.

두 언어권을 포괄하는 정당은 물론 언론매체마저 하나도 없을 정도다.

하지만 플레미시 지방은 조세, 사법, 경제정책, 이민.노동정책 등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이양을 요구하고 나섰고, 왈롱이 이에 완강히 반대하면서 새 연립정부가 출범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플레미시 지역은 물류및 화학 등 지식기반 산업으로의 전환에 성공하면서 유럽내에서 영국, 독일을 앞지르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

반면 과거 지배계급이자 경제적으로도 훨씬 부유했던 왈롱은 철강.석탄 산업이 사양화를 맞으면서 플레미시 쪽에서 떼어주는 일종의 교부금에 의존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플레미시 쪽은 "왜 우리가 왈롱을 먹여살려야 하느냐"며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반면 왈롱 입장에선 잘사는 플레미시 쪽이 자치권 확대를 통해 결국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연정협상이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특히 영국과 프랑스 등 외국언론들이 "분리할 시간이 왔다"(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벨기에인들의 전쟁"(프랑스 누벨 옵세르바테르) 등 분열을 부추기는 보도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플레미시 지방의회가 지난 주 극우정당 블람스 벨랑의 지도자 필립 드빈터의 독립실시 국민투표 동의안을 부결시킨 사실에서 드러나듯 아직까지 실질적인 분리위기로까지 이어지진 않고 있다.

정치분석가들은 과거에도 총선이후 연정이 출범하기까지 무려 5개월이 걸린 기록을 감안할때 이번에도 그에 못지않은 지루한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브뤼셀연합뉴스) 이상인 특파원 sang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