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글로벌 경영 다시 탄력] 주춤하던 '빅5' 도전 걸림돌 사라져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약속한 사회공헌에 진력해달라."(재판부)

"예."(정몽구 회장 고개를 끄덕이며)

"여수박람회 유치에 노력해달라."(재판부)

"최선을 다하겠다."(정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비자금 사건 공판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뒤 사회공헌과 여수엑스포 유치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거듭 밝혔다.

정 회장이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소명을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재다짐을 한 것이다.

이번 집행유예 선고로 정 회장의 경영 행보는 한결 가벼워질 전망이다.

더욱이 올해는 10년 만에 노사 임단협을 무파업으로 타결해 노사 상생의 새로운 전기도 마련했다.

'글로벌 빅5' 도전을 위한 중대한 시점에 터져나온 악재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정 회장의 어깨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무겁다.

1년6개월의 검찰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경영 차질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데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어서다.

정 회장은 특히 위기에 처한 해외시장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재점검해야 하고,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한 활동에도 총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글로벌 경영 발걸음 재촉할 듯

정 회장은 지난 7월23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해외지역본부장 회의에 전달한 메시지를 통해 "엔저(低)와 고(高)유가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선진업체와의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중국 등 후발 업체의 추격이 거세져 글로벌 경영이 중대한 고비에 와 있다"며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체질 강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전 임직원이 총력을 다해야 한다"며 남다른 각오를 주문했다.

정 회장은 그동안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행동 반경이 극도로 좁아져 글로벌 현장 경영에 박차를 가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해외 생산 및 판매 현장을 수시로 찾아 현안을 챙기는 것은 정 회장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영활동 중 하나였다"며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로 자유로워진 만큼 활발한 해외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우선 중국 미국 등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외 현장부터 챙길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는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치열한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지면서 연간 판매목표를 낮출 정도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따라 추석 연휴 이후부터 해외 현장경영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기아차 조지아공장,현대차 체코공장,현대차 및 기아차 중국 제2공장 등 현재 건설 중인 공장을 우선적으로 점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수엑스포 유치 활동도 가속

해외 현장 챙기기와 함께 정 회장이 역점을 둘 부분은 여수엑스포 유치 활동.여수엑스포 명예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회장은 오는 11일 여수에서 명예시민증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다.

특히 세계박람회기구(BIE) 회원국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12~15일 서울과 여수에서 열리는 '여수국제심포지엄'에 참석,BIE 대표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유치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이 심포지엄은 BIE 회원국의 장·차관 등 각국 대표가 대거 참석하는 만큼 유치 활동에 상당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회장은 심포지엄 대부분의 일정을 BIE 대표단과 함께 하며 엑스포 유치를 위한 홍보활동에 전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투명경영 확립과 상생경영에 진력

현대·기아차그룹은 '투명한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투명경영 장치 마련 등 비자금 사건 후속대책 시행을 서두를 방침이다.

이번 비자금 사태를 투명경영체제를 확립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는 것.

우선 불법 비자금 조성이나 편법 승계 의혹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사내 경영감시 활동을 강화키로 했다.

현대차는 이미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에 '이사회외(外) 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관변경안을 승인,윤리위원회 설치를 위한 근거를 마련했다.

국가적 과제 해결을 위해 국내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 방안,중소기업 및 협력사 지원 대책도 마련해 지속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협력사와의 상생 협력을 통해 고용 창출 확대와 수출 증진,선진 기술 지원 등에 지속적으로 매진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약속한 사회공헌활동도 차질없이 추진키로 했다.

현대차는 이달 안에 7명으로 구성된 사회공헌위원회를 발족시켜 11월까지 사업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