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경효 고려대 법과대학장 >

고려대 법학과 교수들은 여름방학 기간 중임에도 쉴 틈이 없어 보였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설립안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마라톤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하경효 고려대 법과대학장은 "지난 3일 로스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전 교수진이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며 "좋은 커리큘럼을 만드는 것이 좋은 로스쿨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하 학장은 "회계학,경제학 등 사회적 수요가 많은 학문과의 융합을 통해 고려대만의 색깔을 가진 로스쿨을 만들겠다"며 "국제화시대에 걸맞게 해외 로스쿨과의 활발한 교류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담=육동인 사회부장

-로스쿨을 도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지금까지의 사법시험이 법조인을 '선발'하는 제도였다면 로스쿨은 법조인을 '양성'하는 시스템입니다.

개방화 시대를 맞아 전문적이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로스쿨 체제가 훨씬 적합하고 효율적이란 얘기지요.

대부분의 교수들 역시 현재의 법학 교육 체계나 사법시험 제도로는 국제화에 걸맞은 법조인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려대 로스쿨은 100년 넘게 이어온 고려대 법학과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법조인을 배출하는 터전이 될 것입니다."

-고려대 법과대학만의 강점을 설명해 주신다면.

"교수진의 전문성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법무대학원이 설치돼 있어 판사나 변호사 등 실무 경험이 많은 교수진이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학부 교수들도 자기 전공분야와 관련해 각종 위원회나 시민단체에서 활동 중이기 때문에 이론과 실무를 모두 겸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국제화를 위해 노력해왔는데 그 결과 구축된 해외 네트워크도 적극 활용할 것입니다."

-해외 교류를 염두에 두고 있는 대학들이 있습니까.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와 미국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Washington University in St.Louis)에서 일반대학원 석사과정을 같이 운영하자고 제안해 온 상태입니다.

고려대에서 1년,그쪽에서 1년 공부한 뒤 외국 법학석사(LLM) 학위와 고려대 석사학위를 함께 취득하게 하자는 것이지요.

로스쿨에서는 이들 대학뿐 아니라 다른 대학들과의 교류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40여개 대학이 로스쿨 유치전에 뛰어들었는데 어디서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십니까.

"교과과정을 어떻게 짜느냐가 승부처입니다.

로스쿨 인가 기준에도 학교마다 어떻게 전문화·특성화를 이룰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미국과 일본의 권위있는 로스쿨들의 커리큘럼을 철저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수요가 많은 쪽으로 커리큘럼을 짜 우수 학생들을 유치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

"학문 간 융합이 세계적 화두이기 때문에 회계학,경제학 등 실용적이고 수요가 많은 학문과 법학을 조화시키는 데 힘쓸 예정입니다.

종래 법학 교육에서 신경쓴 분야가 환경,노동,인권 등에 한정돼 있었는데 이제는 국제금융,중재 등에도 신경 쓸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커리큘럼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교수 숫자가 확보돼 있어야 하고 선발 가능한 학생 수도 어느 정도 보장돼야 합니다."

-고려대 로스쿨의 학생 선발 인원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요.

"정부가 대학의 정원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학생 정원은 탄력적으로 운용하게 해줘야 합니다.

로스쿨 설립 목적대로 다양한 전공자들을 자기 분야의 전문 법률가로 키우기 위해선 여러 분야의 특화된 코스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양한 전공자들을 소화할 수 있지요.

현재 논의되는 학교당 최대 150명 수준으로는 다양한 커리큘럼을 운영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변호사 합격률도 신경써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커리큘럼을 짤 때 그 부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학교들이 변호사 합격률에 신경을 쓴다면 로스쿨 도입 취지가 훼손될 수 있으나 아예 무시하다간 우수한 인재들을 다른 학교에 빼앗길 수 있습니다.

실무 위주의 교육과 변호사 시험을 위한 교육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이 이상적인 로스쿨 커리큘럼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로스쿨 도입으로 기존 법학과 서열이 재편될 것이란 예상도 나옵니다.

"충분히 가능한 얘깁니다.

아마 모든 대학들이 로스쿨 제도 시행을 '위기이자 기회'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울대를 뛰어넘을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대학들이 고려대를 추월할 수도 있습니다.

로스쿨 초기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어디가 우수한지 판단하기 힘들테지만 이들이 졸업한 뒤 '어느 로스쿨 출신이 법조계에서 잘한다더라'라는 입소문이 나면 그 학교로 지원자들이 몰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로스쿨 서열이 만들어지겠지요."

-재단 측의 과감한 투자가 로스쿨을 빨리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겠습니까.

"로스쿨 설립 초기엔 집중적인 투자가 중요합니다.

시설 투자나 과감한 장학금 등 돈이 많이 들어가면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몰릴 겁니다.

그러나 고려대 같은 큰 규모의 대학에서는 학교 재단이 특정 단과대학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기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교수들이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요.

동문들도 큰 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로스쿨 제도 시행을 앞두고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다양한 전공,연령,사회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올텐데 어디에 기준을 맞추고 교육을 시킬지가 걱정입니다.

특히 4년간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똑같은 형태로 교육시켜야 할지 아니면 이들을 분리해 교육시켜야 할지도 고민이고요.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야지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로스쿨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다양한 법률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리=이태훈/사진=강은구 기자 beje@hankyung.com

<약력>

△1952년 경남 진주 출생
△고려대 행정학과(학사)·법학과(석사)
△독일 마인츠대 법과대학(박사)
△1990년 고려대 법대교수
△2006년 고려대 법무대학원 원장 겸 법과대학 학장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