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대기업에 소송 낸 前직원들 손 들어줘

회사가 `경영상 필요'를 내세워 직원을 일방적으로 다른 계열사로 전직시킨 것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9부(이인복 부장판사)는 대기업 계열사인 S카드업체 전 직원 이모씨 등 3명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전직시켜 기존 회사에서 못 받은 퇴직금을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한 1심을 깨고 "피고는 6천215만여원을 주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씨 등은 자의로 회사를 옮겼다기보다는 그룹의 경영상 필요에 의한 일방적 결정에 따라 퇴직과 재입사의 형식을 빌려 다른 계열사로 적(籍)을 옮겼다고 봐야 한다.

이같이 일부 사업부문이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계열사로 이관돼 근로자들이 중간퇴직을 하고 신규 입사한 경우 퇴직은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 등의 회사는 직원 1천500여명 전체를 계열사로 전적(轉籍)시켰고, 이들은 시험 등 입사를 위해 실시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기존 회사의 업무를 승계해 처리했다.

또 근무장소와 직급에 변동이 없었고, 전화번호와 사원번호까지 동일한 것을 사용했으며, 호봉승급과 장기근속 처리시 기존 회사의 재직기간을 통틀어 계산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근로자가 자의로 사직서를 내고 퇴직금을 받았다면 종전 기업과 `근로의 단절'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기업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퇴직과 재입사의 형식을 거친 것에 불과하다면 근로자가 동의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원고들은 대기업인 S전자 신용판매사업부에서 근무하다 그룹 방침에 따라 1995년 퇴직하고 이듬해 1월 계열사인 할부금융사(이후 카드사에 합병)에 입사했다.

함께 퇴직한 1천500여명의 직원들은 모두 `퇴직과 관련해 민ㆍ형사 및 행정상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으며 퇴직금은 전출사에서 받겠다'는 합의서를 썼지만 이씨 등 3명은 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새 회사에서 일하다 퇴직한 이씨 등은 "강요에 의해 부당하게 계열사로 옮겼다"며 기존 회사에서 계속 일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퇴직금을 달라는 소송을 냈고, 1심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스스로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해 퇴직한 것"이라고 판결했지만 항소심은 이를 뒤집었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