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결혼 30주년을 맞은 이모씨(61·서울 역삼동) 부부는 서울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또 한 번의 '결혼식'을 올렸다.

회갑 잔치를 따로 하지 않는 대신 자녀와 가까운 친지 등 20여명을 초청,색다른 이벤트로 30년 전의 결혼식을 재현한 것.5년 전 음식점을 빌려 치렀던 은혼식(결혼 25주년 기념식)과 달리 이날은 실제 결혼식처럼 호텔의 소규모 연회실을 빌려 꽃길을 꾸미고,국악 관현악을 웨딩 행진곡 삼아 부부가 입장하는 세리머니도 가졌다.

결혼 10년차인 박모씨(39·경기도 일산) 부부도 최근 집 근처 스튜디오에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결혼식을 새로 치렀다.

신혼시절의 기분으로 되돌아가 부부애를 다지기 위한 의식이었다.

결혼 기념 행사를 웨딩드레스 등 예복을 입고 실제 결혼식처럼 치르는 '리마인드 웨딩(remind wedding)'이 새 풍속도로 떠오르고 있다.

노년이나 중·장년 부부들이 결혼 50주년이나 25주년 등 특정 주기에 연회 위주로 열어온 금혼식·은혼식과 달리 5년,10년,15년 식으로 기념 주기가 훨씬 짧아졌고 30대 젊은 부부들 사이에 더 많이 열리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리마인드 웨딩' 상품을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고 있고,서울 강남권에는 리마인드 웨딩 전문점을 표방하는 스튜디오들이 늘어나고 있다.

결혼을 '재미있는 이벤트'로 생각하는 세태를 반영한 새로운 현상이다.


○'리마인드 웨딩' 전문점 속속 등장

서울 청담동의 웨딩 스튜디오인 '화이트 갤러리'는 요즘 밀려드는 리마인드 웨딩 고객 덕분에 창업 이후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03년부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견적 의뢰를 받고 있는데 2일 현재 총 1607건을 접수했다.

이 중 1200여건이 지난해에 몰렸다.

강백규 대표는 "전화 접수는 인터넷에 비해 서너 배 더 많다"며 "4,5월 성수기를 앞두고 주문이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 60년차에서 10년차까지 연령층도 다양해졌다는 것.

화이트 갤러리 외에도 서울 강남권에서는 'CF 리마인드웨딩' 등 전문 숍이 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드레스 턱시도 대여 업체만 끼고 있으면 어떤 스튜디오든 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강북이나 수도권 외곽에 위치한 스튜디오들에 리마인드 웨딩이 틈새 시장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스튜디오에서의 단순한 사진 촬영 외에 호텔이나 교회 등을 빌려 실제 결혼식을 재연하는 '앙코르 결혼식'도 늘어나는 추세다.

권세령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홍보팀 대리는 "약혼식이 주로 열리는 소연회장 고객 중 앙코르 결혼 커플이 꽤 된다"며 "3,4년 전부터 매년 8∼10건 정도의 앙코르 결혼식이 열린다"고 전했다.

'리마인드 웨딩'이 늘어나면서 40,50대들의 결혼 예복 구매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LG패션 관계자는 "청첩장을 제시하고 예복을 사면 로봇 청소기를 덤으로 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청첩장이 없는 40,50대 리마인드 웨딩 고객들로부터 항의를 많이 받았다"며 "이에 따라 웨딩홀 계약서만 보여줘도 사은품을 나눠주는 것으로 지침을 바꿨다"고 말했다.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

리마인드 웨딩이 새 풍속도로 떠오른 데 대해 전문가들은 남성의 불안 심리를 반영한 측면이 강하다고 풀이하고 있다.

성경원 한국성교육연구소장은 "리마인드 웨딩 확산은 가정마다 '가부장'으로서 남편의 권위가 약해진 대신 아내들의 발언권이 높아지고 있는 사회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며 "크고 작은 이유로 이혼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초심'으로 돌아가 부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편으로도 앙코르 결혼식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웨딩 스튜디오 관계자도 "리마인드 결혼식을 신청하는 고객의 절반 이상이 남성"이라며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려는 남편들의 노력이 그만큼 절박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결혼에 대한 관념이 '엄숙함'에서 '재미'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도 '리마인드 웨딩'을 확산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웨딩 컨설팅 업체인 '더웨딩'의 김정희 실장은 "당사자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결혼기념식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요즘 청·장년 세대의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