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심 '확실한' 판단 받아야 vs 여론 부담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고(故) 우홍선씨 등 8명에게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검찰이 항소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안창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24일 "판결문을 받아보고 여러 사안을 고려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만 말했다.

검찰이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신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위법한 수사ㆍ재판의 희생양이 된 이들의 명예가 32년 만에 회복된 마당에 또다시 검찰이 항소할 경우 고인과 유가족의 고통이 그만큼 연장되기 때문이다.

회한과 인내로 30년 넘는 세월을 버텨 온 유가족들이지만 또 한 번의 송사는 대법원 판결 하루 만에 가족을 형장의 이슬로 보낸 뒤 힘겹게 무죄 판결을 받은 터여서 참기 어려운 큰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정보원 등도 이 사건에 대해 잇따라 당시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사건이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어 관련 시민단체와 여론이 반발할 것이 뻔해 7일 이내에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검찰을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작년 12월18일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면서 이례적으로 구형 없는 논고를 했었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해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 진행되고 있고 국가배상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어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기 위해서는 상급심의 `확실한' 판단을 받아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검찰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유가족이 개별 불법 행위자의 책임을 물은 게 아니라 국가에 포괄적인 책임을 지운 것인 만큼 나중에 국가가 당시 재판부나 공안당국 관련자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거나 유가족이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낼 경우, 또 나머지 징역형을 받았던 피고인이 같은 취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1심 판결로는 기속력이 없어 상급심이 체계적인 법리 판단을 해 분명한 '잣대'를 제시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사법부가 뒤늦게나마 과거의 오점을 완전히 털어버리기 위해서는 하급심의 `판결'이 아니라 대법원의 `판례'를 세워야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똑같은 공판조서에 대해 과거 대법원이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린 반면 재심이기는 하지만 1심이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상급심 결정을 하급심이 뒤집은 형국이어서 사법부가 `과거'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인혁당 사건 등 적정한 사건이 대법원에 상고되면 전원합의체에서 무죄 취지로 판결해 새 판례를 확립하는 식으로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구상을 몇차례 언론 등을 통해 밝혔었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과거 유죄 판결이 내려진 뒤 증거 조작, 고문 등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무죄 등으로 재조명된 유사 사건이 쌓여 있어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배상을 청구할 시효도 상급심이 판단해줘야한다.

서울고법이 작년 2월 `의문사 1호'인 고 최종길 교수 유족에게 거액의 배상판결을 내리면서 "배상청구 시효는 소멸했으나 의문사위가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는 유족으로서도 진상을 몰랐다고 봐야 한다"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지만 이 판결도 항소심 단계에서 끝나 대법원 확정 판례가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소멸시효에 대한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강의영 기자 keyke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