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국회 내 발언이 직무와 관련이 없거나 허위임을 명백히 알고 있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면 헌법이 규정한 면책특권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국회의원의 발언이 직무와 관련이 있다면 면책특권 대상에 포함된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해 왔으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2부(주심 박일환 대법관)는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이 민정비서관 재임 당시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이른바 `썬앤문 95억 제공설'에 자신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을 상대로 "허위 발언으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가 허위임을 알았다기보다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자금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미처 진위 여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거나 다소 근거가 부족한 채로 발언을 했다고 봄이 상당하다.

면책특권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면책특권의 범위와 관련, "발언 내용이 직무와 아무 관련이 없음이 분명하거나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도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등까지 면책특권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규정했다.

다만 "발언 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발언 내용에 근거가 다소 부족하거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직무 수행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면책특권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헌법 상의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회 내에서 자유롭게 발언하고 표결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입법 및 국정통제 등의 권한을 적정하게 행사하고 그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취지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 의원은 2003년 12월 국회 예결위 대정부 질의에서 강금실 당시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썬앤문 그룹 김성래 전 부회장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 측에 이호철 비서관을 통해 95억원을 줬다'고 하는데 왜 조사 안 하느냐"고 발언했다.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팀은 이듬해 3월 "95억 정치권 제공 관련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부실한 녹취과정에서 비롯된 오해에 불과하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