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에게만 사법고시 응시 기회를 줘서 법조인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높이자는 취지의 '로스쿨(Law School) 제도',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무죄를 따지는 '국민배심제',변호사의 수임 자료 제출을 의무화한 변호사법 개정안….법원 검찰 대한변호사협회를 비롯해 정부 언론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 대표 20명으로 구성된 대통령 자문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내놓은 이들 사법개혁법안들이 좌초 위기에 몰렸다.

사개추위는 올해 말로 활동이 종료되는 반면 국회에 제출된 법안들은 여야의 정쟁과 일부 변호사 출신 의원들의 반대로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사개추위는 20일 마지막 회의를 갖고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사법개혁안 국회서 낮잠

사개추위는 지난 2년간 25개 법률안을 기초해 국회에 제출했으나 범죄피해자보호법 등 비중이 덜한 6개 법률만 입법 완료되고 나머지 주요 법안은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내용을 합의한 '로스쿨 법안'의 경우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재개정과 연계해 처리가 늦춰진 상태에서 변호사 출신 여야 의원들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어 법사위 소위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배심제 관련 법안과 공판중심주의,인신구속제도 개혁안 등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법사위원들의 교체로 원점에서 재논의되고 있다.

변호사법 개정안과 재판기록 확대 방안은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예 상임위 배정조차 되지 않았다.

사법개혁이 늦춰지면서 로스쿨 등을 준비해온 대학들은 혼란에 빠졌다.

교육부에 따르면 로스쿨 도입에 대비해 전국 40여개 대학이 전임교수 영입과 건물 설립 등을 위해 2004년부터 2000억원 넘게 투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입법이 지연되면서 취업·취학에 많은 장애와 혼선을 빚고 있다.

○결국 좌초되나

여야의 정쟁도 문제지만 법조인 출신 의원들의 반대는 개혁법안 마련의 또 다른 걸림돌이다.

변호사 출신인 안상수 국회 법사위원장은 지난 8월 한나라당 의원워크숍에서 "사법개혁안은 사개추위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사법개혁안 '절대 불가' 주장을 폈고 이 기조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으로 법사위에서 교육위로 상임위를 바꾼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은 "대학교육 정상화 논리는 허구며 오히려 1년에 3000만원의 대학원 비용을 못 내는 빈곤층은 변호사의 꿈을 접어야 한다"며 로스쿨제도에 강력한 제동을 걸고 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여야 정치권이 대선정국에 돌입해 민생법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사개추위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연내 입법을 강력히 요청한 이유도 내년 초 여야 각당의 경선바람 조기 점화 등으로 법안 처리 가능성이 낮아질 것으로 우려한 때문이다.

한승헌 사개추위 위원장은 "개혁법안은 법원과 검찰이 입장을 다 밝혀서 성안된 것으로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도 견해차가 그리 크지 않다"며 "올해 내에 처리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명숙 총리도 사법 민주화와 투명화 및 선진화를 위한 제도의 도입과 정비를 목표로 한 사법개혁안은 정쟁의 대상이 될 여지가 없다"며 조속한 법안 통과를 요청했다.

정태웅·김홍열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