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펴낸 초등학생용 환경 교과서에 기업이나 고소득층에 대해 반감을 갖게 하거나 근면.성실 등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에 의문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적잖게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책은 5.6학년용 '어린이 초록세상'과 3.4학년용 '어린이 초록나라' 등으로,환경부가 기획·개발해 심의까지 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5.6학년용 교과서 48~49쪽의 '생태 발자국' 지수 산출 방식. 16개 문항을 제시한 뒤 이의 실천 여부에 따라 일정 점수를 깎아 환경친화적인 생활 방식을 지수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질문 문항과 감점 기준의 대부분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계층 간 위화감을 줄 수 있는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여름 가족 여행을 어디에 다녀왔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일본,중국 등 가까운 외국을 다녀온 경우에는 40점,미국이나 유럽 등 그밖의 다른 나라를 다녀왔으면 70점이 깎인다. 감점이 70점만 넘어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처럼 산다면 지구가 2개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또 야외 나들이 횟수,채식주의자인지 여부,자동차 보유 대수,집에 있는 방의 숫자 등도 중요한 감점 요인으로 분류돼 학생들로 하여금 자칫 '부자=반환경주의자'라는 편견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지적이다.

또 초등 학생들이 환경 문제와 관련해 기업에 대해 막연한 반감을 갖게 하는 표현도 곳곳에 나타나 있다. 3.4학년용 교과서 84쪽에서는 환경 문제에 대한 원인 찾기와 관련해 '강이 오염되는 것은 자기만 생각하는 욕심쟁이 기업이 처리시설 투자비를 아끼기 위해 일어난다'는 식의 보기를 들고 있다. 5.6학년용 교과서(131쪽)에는 '요즈음 기업에서 공기 청정기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한 쪽에서는 공기를 오염시키고 다른 쪽에서는 오염된 공기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명해 보라는 질문도 들어 있다.

근면.성실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에 대해 초등학생들이 혼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표현들도 있다. 5.6학년용 교과서 50~51쪽에는 '슬로우 라이프'에 대해 설명하면서 '적은 에너지로 살아가면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무에 매달려 잠을 자는 나무 늘보에게서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태도를 배워 보자'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교과 내용에 대해 심지어는 환경 단체 관계자들 조차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국내 한 유명 환경단체에서 어린이 환경 교육간사를 맡고 있는 김모씨는 "표현이 상당히 과격하고 계층간 위화감을 줄 수 있으며 기업에 대해서도 1980~1990년대에나 적용될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며 "초등학생용 환경 교재로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교과서 개발과 심의를 맡은 환경부 민간환경협력과 심무경 과장은 "환경적 가치관에 따라 만든 교과서라는 점에 유의해 달라"며 "만약 문제가 있다면 개정판을 낼 때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 8월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이 교과서에 대한 검인정을 받았으며 내년 봄 학기부터 초등학교 재량시간(특활시간)에 환경 교재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현재 시도교육청과 전국 초등학교 등에 5000부를 홍보용으로 배포한 상태다.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